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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우리 다 ‘길 위의 나그네’란 걸 깨달을 때 희망의 시간 올 것”

등록 2019-01-20 09:42수정 2019-01-20 21:39

[짬] 첫 에세이 낸 최대환 신부

최대환 신부.                                                       강성만 선임기자
최대환 신부. 강성만 선임기자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파람북). 천주교 의정부교구 최대환 신부가 최근 펴낸 책이다. 3년 전 <최대환 신부의 음악 이야기>란 이름으로 <의정부 주보>에 연재한 글과 천주교주교회의가 내는 <매일 미사> 등에 쓴 글을 모았다. 책은 잘 차린 인문학 잔칫상이다. 하이데거, 아렌트, 베냐민, 아감벤 등 사상계의 큰 별들을 불러 그들이 말하려 했던 것을 풀어주고 그게 어떻게 그리스도교 정신과 닿아 있는지 나직하게 말한다.

멜랑콜리(우울한 정조)가 진정한 역사 이해의 근원이 된다는 독일 철학자 베냐민의 사유를 두고 저자는 마태복음 5장과 루카복음 6장 성경 구절을 떠올린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베냐민과 성경의 뜻을 이렇게 겹친다. ‘슬픔을 빗겨 나가지 않을 때 슬픔의 한복판까지 내려가 애도할 수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태어남)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종말 사이의 ‘남아 있는 시간’을 살아가기에 낯선 곳을 순례하는 이의 실존을 지녔다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통찰을 받아, 우리 시대 구원의 희망은 ‘떠돌이 개’와 같은 신세가 된 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 모두 ‘길 위의 나그네’란 걸 깨달을 때 비로소 희망과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부턴 라디오 방송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 주말 프로그램인 <최대환 신부의 음악서재>다. “1시간은 책 이야기를, 1시간은 엘피를 틀어요. 지난주는 괴테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다뤘어요.” 3월엔 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에서 괴테와 릴케, 헤세의 작품세계와 종교적 의미를 짚는 연속 강연도 시작한다.

최대환 신부가 최근 펴낸 에세이집 표지.
최대환 신부가 최근 펴낸 에세이집 표지.

18일 서울 명동성당 근처 카페에서 최 신부를 만났다. 먼저 “신부님 책에 왜 이렇게 철학자가 많이 나오느냐”고 말을 건넸다.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어요. 중학생 때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고 감화를 많이 받았어요. 89년 신학교를 갔을 때도 선배들이 책을 많이 읽는 분위기였죠.”

그는 현재 혜화동 대신학교에서 생활지도 신부로 있다. 가톨릭대 성신교정 신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대신학교는 가톨릭대 신학부 학생 중 신부가 되고 싶은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이죠. 가톨릭대에선 근대철학사와 중세철학사를 가르칩니다.” 사제 서품은 98년에 받았다. 보좌 신부를 거쳐 독일 유학을 가 뮌헨 예수회 철학대에서 8년가량 공부했다.

성직의 길을 생각한 중3부터 고3까지 예비신학교를 다녔단다. 이 4년의 일부는 5공 군사 정권의 살기가 등등했던 시기와도 겹친다. “(신부가 된 데는) 기도 체험 외에도 투신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도 있었죠. 편하게 사는 것보다 투신하는 게 하느님이 원하는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투신하는 삶? “중학생 때 제가 다니던 성당 신부께서는 광주항쟁을 찍은 독일 비디오도 틀어주셨어요. 주일학교 교사들은 학생운동을 하던 분들이 많았죠. 아버지가 전문직이라 집안 형편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탓에 사회적 부채감을 많이 느꼈어요.”

독일에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오래 붙들고 공부했단다. 박사 논문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현명함)’를 주제로 쓰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중요한 원칙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에 대해 깊이 사유했죠. 옳은 것과 가능한 것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려고 했죠. 지각도 중요하게 여겨 도덕적이면서도 공감력이 있는 사람을 현명한 사람의 표상으로 봤어요. 많이 배웁니다.”

책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숙고의 글도 나온다. 그는 교황이 5년 전 복음 선포에 대한 권고를 담은 <복음의 기쁨>을 내며 ‘시간이 공간보다 중요하다’고 한 것에 주목했다. “교황은 인간이 중요하다고 해요. 여기 인간은 추상적이 아니라 삶의 서사가 있는 인간이죠. 태어나고 자라고 친구를 사귀고 직장을 얻는 그 인간입니다. 그 모든 게 시간 안에서 이뤄집니다. 이게 삶의 서사라는 게 교황 생각이죠. 최근 을지로 재개발 논란을 보세요. 공간만 보면 깨끗함이란 결과가 중요해요. 눈에 보이고, 양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게 공간이라면 시간은 대체 불가능한, 사람만의 역사이죠. 현대철학의 주요 흐름도 개인과 공동체의 서사를 귀하게 여기고 있어요.”

음악 주제 기고와 묵상 글 모아
인문학 사유서 구원의 길 숙고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진행도

“인간 존엄보다 경제논리 물들어
‘한 사람 보라’ 교황 말씀 새겨야
인내심 갖고 선의 쌓는 게 중요”

교황은 2015년 반포한 교황회칙 <찬미 받으소서>에서 인간 존엄과 직결된 사회 정의를 삶의 윤리에 포함했다. 하지만 최 신부가 보기에 한국사회는 인간 존엄보다는 세상의 셈법 즉 경제논리에 갇혀 있다. 위기란 생각마저 든단다.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까? “한 사람을 보라는 교황 말씀이 힘을 줍니다. 교황은 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게 소중하다고 했죠. 이해관계를 떠나 내가 만난 사람의 행복을 진지하게 빌어주는 게 중요해요. 그런 선의가 출발점이죠. 인내심을 갖고 선의를 쌓아야죠. 선의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도록요. 선의는 인프라입니다. 쌓아가야죠.”

교황은 자신에게 축복이자 도전이란 말도 했다. “교황과 같이 비전을 주는 분을 보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지만 교황의 비전을 한국사회에서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은 도전이죠.”

최대환 신부.           강성만 선임기자
최대환 신부. 강성만 선임기자
교회가 사회에 부담을 준다는 시선도 있다. “교회가 안주해온 점은 분명 있어요. 하지만 교회를 비판한 아감벤 같은 철학자도 지금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은 교회에 있다고 했죠.”

‘성직자의 공부’에 관해 물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근대사상인 자유와 평등을 교회 안에 받아들였어요. 종교인들도 공부해야 그 사상을 소화할 수 있죠.” 니체와 같이 교회를 비판한 이라도 그 주장을 알아야 어떻게 대응할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이겐 비저 신부는 (신은 죽었다는) 니체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시체처럼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니다’는 니체 사유의 모티브에는 공감하셨어요. (그 모티브를 받아) 신앙생활도 생기와 힘이 넘치도록 교회가 이끌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책읽기는 사람을 겸손하게 살도록 하죠. 늘 배우려는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종교가 배우는 걸 포기하는 순간 독단으로 흐를 수 있어요.”

책을 고를 때 신에 대한 저자의 태도를 고려하는지? “그렇지 않아요. 니체든 어떤 사람이라도 다 읽을 수 있어요. 진지하게 모색한 철학은 다 배울 수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현대 철학자’는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라고 했다. “하이데거는 영감을 줍니다. 아리스토텔레스토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길의 문을 열었어요. 아렌트는 현대인이 궁금해하는 문제에 답을 준 철학자입니다.”

그는 책에서 ‘우울감 아래서 겪는 갈등과 고뇌의 소중함’도 강조했다. “고독과 죽음과 같은 우울한 생각을 깊게 할수록 내면세계가 깊어집니다. 그만큼 사회도 깊어지죠. 지금 한국사회는 바닥이 얇아요.” 말을 이었다. “대화의 수단은 많지만 품위있는 대화는 쉽지 않아요. 서로 내면 세계가 있다면 그걸 풀어내 흥미롭게 대화할 수 있겠죠. 그렇지 않으면 공개된 이야기만 합니다. 궁금한 게 없으니까요. 지금은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자존감을 세웁니다. 소수만이 그렇게 할 수 있죠. 내면세계가 있어야 자존감을 세운다면 인격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책을 많이 보는 사회엔 내면세계가 있어요. 독일에서 빵굽는 아저씨를 만나 이야기해보면 의외로 내면세계가 깊어요. 예전 우리 시장 할머니들도 그랬어요. 요즘은 그런 분들을 만나기 쉽지 않아요. 우울한 사람은 보는 눈이 섬세해 공감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세상의 밝은 면만 보는 이들은 사물 이면의 모습을 헤아리는 능력이 떨어진다고도 하잖아요.”

음악은 어려서부터 좋아했고 영화 관람도 즐긴다. 영화 관람은 누구랑? “주로 혼자 봅니다. 예전엔 아트 영화도 좋아했지만 요즘은 대중적인 영화에서 메시지를 찾는 걸 좋아합니다. 아트 영화를 한창 좋아할 때 다른 분과 같이 보면 불편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경험 뒤로는 혼자 봅니다. 음악은 록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해요. 뮌헨에서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자주 접하면서 클래식에 대한 흥미가 커졌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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