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일시 폐쇄된 혜화역 2번 출구 앞 엘리베이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제공
장애인의 목숨을 건 투쟁으로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누가 이용하고 있는지 떠올려보자. 노인, 무거운 짐을 든 비장애인들로 가득하다.
약자를 위한 시스템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롭다는 사실과 우리는 누군가의 투쟁에 빚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2001년 1월 23일 수도권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하면서 장애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버스를 타자!>(2002)는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한 이동장치 때문에 죽을 수 없다는 장애인들의 절박한 외침을 성실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사회적 약자를 오래 카메라에 담아온, 지금은 세상을 떠난 박종필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버스를 타자!> 한 장면. 다큐인 제공
많은 비장애인은 팬데믹 시기 자가격리 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겪으면서 이동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권임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그런데 영화가 제작될 당시 한달에 외출을 다섯번 정도밖에 못 하는 장애인들은 70.5%나 되었다. 마땅한 이동 수단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한 출연자는 공무원과 만났을 때 이렇게 외친다. “제가 서른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서른살에야 밖에 나와 봤어요.”
영화가 담고 있는 이동권 투쟁 시위의 이름은 ‘장애인과 함께 버스타기’이다. 장애인들은 태어나서 한번도 타지 못했던 버스를 타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 모였다. 그런데 길을 나서기도 전에 경찰의 진압 작전으로 아예 도로로 나가지도 못하게 된다. 폭력적인 건 공권력뿐만이 아니다. ‘시민’ 비장애인들의 시선도 별다르지 않다. “시민을 볼모로 이렇게 해도 되느냐, 대한민국이 썩었다. 나는 미국에서 왔는데 이런 꼴은 처음 봤다.” 이런 말들이 비수처럼 꽂힌다. 시민들과 다툼 끝에 활동가 박경석은 이렇게 말한다. “잠깐의 불편과 지연이 그렇게까지 화가 나시느냐. 우리는 평생을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왔다. 장애인 이동권은 시혜와 동정의 문제가 아닌 당당한 인간의 권리”라고.
영화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버스를 타자!> 한 장면. 다큐인 제공
하지만 이들의 처절한 외침에 정부는 응답하지 않고, 예산과 도로 환경을 이유로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미룬다. 사과 요구도, 몇 개월에 걸친 면담 요청도 회피하고, 부처 간 미루기로 이어지는 시간 때문에 투쟁의 강도 역시 높아진다. 쇠사슬로 버스 손잡이에 자신을 묶고,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만나 주지 않는 장관을 찾아 행사장으로 향한다. 간신히 잡힌 국무총리실 면담에 참석하려고 간 건물의 장애인 리프트는 고장이 나 있다. 모든 불합리한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다.
결국 39일의 단식투쟁 끝에 장애인 인권운동 활동가들은 2004년까지 모든 서울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받는다. 아직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장애인들의 투쟁 덕에 2021년 현재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2.2%에 이른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언한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서울시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65.6%에 불과하다. 지난 6일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위한 시위를 막겠다고, 서울 혜화역 엘리베이터가 봉쇄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들의 투쟁으로 손실을 입었다며 시위에 참여한 장애인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시작했다. 당연한 권리를 요청하는 일이 불법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여전히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인한 지하철 지연으로 짜증이 난 당신이라면, 이 다큐멘터리를 권한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투쟁으로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누가 이용하고 있는지 떠올려보자. 노인, 무거운 짐을 든 비장애인들로 가득하다. 나도 무거운 짐이 있을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스템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롭다는 사실과 우리는 누군가의 투쟁에 빚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큐멘터리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에서 관람할 수 있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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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 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