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Barrier Free)’ 인증 확대를 알리는 캠페인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역 앞 계단에서 열려 비에프 스티커가 계단에 붙어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뇌병변 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는 배재현(43)씨에게 편의점은 편의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대형 편의점 외엔 입구에 휠체어 경사로가 없는데다 편의점 입구는 매우 좁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편의점에 들어가도 물품 진열장 통로는 더욱 좁아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배 씨는 “휠체어를 타면 그나마 편할 줄 알았는데 편의점과 카페, 미용실 등 대부분 생활시설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지 않아 매번 가는 곳만 한정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한 번은 자주 가는 고깃집 경사로가 갑자기 없어져서 당황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배씨와 같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과 노인 등이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엔 휠체어 경사로 등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 설치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 편의법) 시행령’은 300㎡(약 90평) 이상의 슈퍼마켓·일용품소매점·일반음식점, 500㎡(약 150평) 이상의 이·미용원과 목욕장, 의원·치과의원·한의원에만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5월부터는 소규모 슈퍼마켓과 미용실 등 동네가게에도 경사로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보건복지부는 새로짓는 50㎡(약 15평) 이상의 소규모 식당·카페 등 근린생활시설에도 휠체어 경사로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 일부개정령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만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돼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소규모 근린생활시설 접근이 불가능했다. 장애인단체의 지속적인 개선요구를 반영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개정 시행령에 따라 슈퍼마켓과 일용품소매점, 일반음식점의 편의시설 의무설치 바닥면적은 30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이·미용원도 50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강화된다. 목욕장은 500㎡ 이상에서 300㎡ 이상으로, 의원·치과의원·한의원·조산원·산후조리원은 500㎡ 이상에서 100㎡ 이상으로 기준이 높아진다. 300㎡ 이상만 편의시설 설치가 의무화됐던 휴게음식점과 제과점도 대상 면적이 50㎡ 이상∼300㎡ 미만으로 확대된다. 편의시설은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이동하거나 시설을 이용할 때 편리하게 하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설과 설비로, 휠체어 리프트·경사로와 같은 주출입구 높이 차이 제거와 장애인전용 주차구역 등이 해당한다. 다만 개정 시행령은 기존 건물의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축과 증축, 개축, 재축되는 소규모 근린생활 시설에 한정해 적용된다. 복지부가 추정하는 해당 시설은 연간 약 1만7700개다.
하지만 개정 시행령에 대해 장애인단체들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놨다. 박승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장애인 단체는 바닥면적 제한을 두는 것 자체가 장애인들이 출입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문제제기를 해왔는데, 복지부에서 일방적으로 기준을 50㎡로 바꿔 시행령을 개정했다”며 “300㎡에서 50㎡로 적용 범위가 넓어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존 건물엔 소급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 당사자들은 결국 몇십년을 또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편의시설 설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배재현씨는 “경사로가 있어도 다리처럼 불안하게 놓여 있거나 경사가 너무 높거나 휠체어 뒷바퀴가 걸리는 등 위험한 곳이 많아 기존 편의시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면적 기준 등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경사로 기울기와 넓이 등을 장애인을 위해 재고해줬음 좋겠다”고 밝혔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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