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업무용으로 렌트해 사용하던 차량(G80)을 의원 임기 종료 뒤 구입하고, 차량 반납 때 되돌려받을 수 없는 초기 보증금 200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해 정치자금법 위반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6000여만원짜리 차량을 사실상 사비 900만원가량에 구입한 것이어서, ‘관사테크’ 논란에 이은 ‘관용차테크’라는 비판도 나온다.
9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한겨레>의 취재를 종합하면, 김승희 후보자가 20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2017년 2월∼2020년 5월 1857만원의 렌터카 보증금과 매달 128만2000원의 렌탈비 등을 정치자금에서 지불했다. 또 의정활동이 끝난 뒤인 2020년 6월 928만5000원만 내고 해당 차량을 구입했다. 당시 김 후보자의 계약서엔 ‘보증금 1857만원은 36개월 후 인수 시 감가상각으로 0원이 됨을 확인합니다. 따라서 실제 차량인수가액은 잔액 9285000(928만5000원)임을 확인합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관용차를 빌릴 때부터 향후 개인 차량으로 매입할 것으로 염두에 두고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자금법 제2조 3항을 보면 “정치자금은 정치 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경비로만 지출하여야 하며 사적 경비로 지출하거나 부정한 용도로 지출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해당 계약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본인은 몰랐다”는 궁색한 해명을 내놨다. 이날 복지부가 낸 설명자료를 보면 “차량을 임차하면서 구체적인 차량임대차 계약을 회계실무진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후보자는 계약서의 세부내용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보증금이 인수 시 0원이 된다’는 문구와 관련해선 “당시 의원실 회계담당자는 이 표현을 계약만료 후 보증금이 소멸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고 책임을 담당 실무자에게 떠넘겼다. 문제가 되는 차량 보증금도 지난 8일이 돼서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반납했다.
김 후보자가 빌린 뒤 매입한 2017년식 G80 제네시스 프리미엄 럭셔리 차량은 풀 옵션인 점등을 고려하면 2017년도 기준으로 약 6390만원이다. 하지만 실제 김 후보자는 2020년 렌탈 계약이 끝난 뒤 해당 차량을 928만5000원에 구입해 시장가격의 약 15%의 금액만 지불한 셈이다. 후보자가 최근 제출한 재산신고사항에 적힌 해당 차량의 가액(3363만원)과 비교해도 30% 수준에 그친다.
또한 김 후보자의 ‘제20대 정치자금회계보고서’를 보면, 의정활동이 종료되는 2020년 5월29일 직전인 2020년 3월30일과 5월7일 약 400만원을 각각 차량 도색과 광택 등 차량관리비로 지불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지난 8일 “잦은 경미한 사고로 외관이 좋지 않았고, 렌트 차량 계약 만료 시점에 임대차 계약서 약관상 원상복구 의무에 따라 도색작업을 실시했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 렌터카업체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일반적으로는 렌터카는 관리나 정비의 책임이 소유주인 회사에 있는데 굳이 차량관리비를 지불한 건 드물고 본인이 인수할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보증금에 매달 렌트비로 128만원 가량을 36개월 낸 걸 계산하면 반납 기한 전에 신차 가격을 거의 꽉 채워서 지불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고영인 의원은 “계약서를 쓸 당시부터 인수할 목적으로 특약사항까지 적어놓고도 김 후보자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다, 마침내 제기한 의혹이 사실임을 실토하면서도 애꿎은 회계책임자의 실수로 몰아갔다”며 “지금까지 국회의원 출신이 국무위원 후보로 낙마한 사례가 없었는데, 김승희 후보자가 그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 후보자는 관사에 살면서 세종시 아파트를 특별분양 받아 ‘관사 재테크’ 논란도 일었다. 김 후보자는 2011년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약처) 차장에 취임했고, 2012년 6월 세종시 도담동 힐스테이트 아파트 공무원 특별공급 분양을 받았다. 이후 2013년 4월 공직을 떠났다가, 2015년 4월 식약처장에 임명되며 다시 관사로 돌아왔다. 특별공급 분양 당시 김 후보자는 식약처에서 제공하는 관사에 거주하고 있었다. 차장 시절에는 월 25만원가량 관리비를 지출하고, 처장으로 취임해서는 무료로 거주했다. 김 후보자는 2012년 분양받은 세종 아파트를 5년동안 임대한 뒤 팔아 1억5천만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챙겨 ‘갭투기’ 의혹을 받았다. 김 후보자는 “실거주 목적으로 분양을 신청했다”고 해명했으나, 관사가 제공되는 데다 이미 목동과 일산에 주택 두 채를 보유하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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