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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수서행 SRT는 암환자를 싣고 달린다

등록 2023-02-09 07:00수정 2023-02-13 14:19

서울로 가는 지역 암환자
‘고난의 상경치료’ 리포트 ②
‘마지막 기회’도 서울에…
지난해 12월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수서역 앞에서 삼성서울병원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지난해 12월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수서역 앞에서 삼성서울병원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큰 병 걸리면 서울로 가라.’ 해마다 비수도권에 사는, 국내 사망원인 1위 암 환자의 30%, 소아암 환자는 70%가량이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향한다. 체력이 약한 환자가 4~5시간씩 걸려 수백㎞를 통원하거나, 아예 병원 옆에 거처를 얻어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수도권 대형병원 인근에 하나둘씩 환자 숙소가 들어서더니 이제 고시원·고시텔·셰어하우스·요양병원이 밀집한 ‘환자촌’으로 자리잡았다. <한겨레>는 지난해 11월부터 석달간 ‘빅5’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과 경기도 국립암센터 인근에서 지역 필수의료 공백을 틈타 성업 중인 환자방 실태를 취재했다. 또 같은 기간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치료받는 지역 암 환자와 보호자 46명을 인터뷰하고, 188명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 10명의 자문을 거쳐 한국의 지역 의료 불평등 실태와 필수의료·의료전달체계 대책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지난달 30일 오전 10시께, 영하의 날씨에도 삼성서울병원 셔틀버스 대기줄이 50m 이상 길게 늘어섰다. 배차간격은 8분. 셔틀버스는 시간당 300명의 환자와 보호자를 실어날랐다. 이렇게 취재진이 방문한 수서역 일대는 서울로 먼 거리를 통원하는 중증 환자와 보호자의 정거장이었다. 대다수가 지역에서 에스알티(SRT) 고속열차를 타고 온 중증 환자다.

빅5 병원과 가깝고 셔틀 운행

수서역이 암 환자 등 중증 환자들의 거점역이 된 것은 서울의 주요 대형 병원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빅5’ 중 삼성서울병원(서울 강남구, 약 2㎞), 서울아산병원(서울 송파구, 8㎞), 서울성모병원(서울 서초구, 14㎞)이 멀지 않다. 강남세브란스병원(서울 강남구, 6㎞), 분당서울대병원(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20㎞)도 접근성이 좋다. 특히 삼성서울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수서역에서 병원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심장질환 관련 환자 보호자 김아무개(52)씨는 “사는 지역인 충북 청주보다 서울에서 치료를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 병원에 가기로 했다”며 “어려운 치료인데, 지역은 시스템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소아암 환아 서지우(가명·3)와 어머니가 지난해 11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채혈을 마친 뒤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소아암 환아 서지우(가명·3)와 어머니가 지난해 11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채혈을 마친 뒤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체력소모·교통비 만만찮지만…“지역 의료시스템 부족”

서울로 통원치료를 다니는 환자와 보호자는 먼 여정 탓에 체력이 부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경북 의성에 사는 림프종 환자 김진희(가명·66)씨는 자택에서 국립암센터(경기도 고양시)까지 왕복 10시간을 오간다. 이 여정은 한달에 두번 이상 반복된다. 항암치료 후에는 다리 저림이 심해져 힘겹다. “지금 다리 밑으로는 완전히 내 살이 아닌 것처럼 저려요. 겨울에도 그렇고, 여름에 기차에서 에어컨을 틀 때요, 발이 저리고 시리니까 양말 안에다 손난로를 넣어서 오고 그랬어요.” 먼 거리를 와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간 적도 있다. 치료 전에 하는 혈액검사에서 당일 항암치료가 부적합하다는 수치가 나와서다.

임신 7개월차인 염혜영(가명·35)씨는 소아암 환자인 딸 서지우(가명·3)를 데리고 광주광역시에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까지 일주일에 2~3번, 한달 기준 8~10번을 왕복한다. 지역 병원에 의료진이 없었고, 서울에 머물기는 여의치 않았다. 지난해 11월 만난 혜영씨는 “출산이 가까워지면 제가 지우를 데리고 가지 못하니 막막하고 걱정이 된다”고 했다.

교통비 부담도 상당하다. 혜영씨가 서울로 지우를 데리고 갈 때마다 왕복 20만원이 넘게 든다. 기차비와 역에서 내려서 타는 택시비를 합친 금액이다. 한달 서울까지 왕복한 기차, 택시비를 합하면 100만원에 이른다. 자가용을 이용해 서울로 가더라도 기름값으로 한달에 수십만원이 든다.

그럼에도 환자들의 체력과 비용을 소진하는 ‘수도권 쏠림 현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소재 종합병원 이상급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비수도권 암 환자들은 2012년 19만4563명에서 2021년 29만1053명으로 50% 늘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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