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이 2018년 4월 11일 오전 장애인 접근성 보장을 요구하며 계단으로 출입이 불가능한 서울 명동 지에스(GS)25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내 민간·공공기관 10곳 중 6곳은 재난 시 장애인 대피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전히 상당수의 장애인이 대중교통 등 이동 시 큰 차별을 겪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24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차별 영역과 현황 등을 담은 <2021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2020년 개정돼 법적 근거가 마련된 후 이뤄진 첫 조사다. 보건복지부·한국장애인개발원은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공공·민간 기관(민간 사업장의 경우 상시 노동자 30인 미만은 법률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제외) 등 2194곳과 장애인 당사자 1843명을 설문조사·인터뷰했다.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대피가 더욱 어려울 수 있지만, 공공·민간 기관의 장애인 안전 대응 조처가 크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의 57.6%는 화재나 지진 등의 재난 발생 시 장애인을 위한 대응·대피 계획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필요성 인식 부족’을 선택한 경우(40.3%)가 가장 많았다. 또 기관들은 ‘내부 운영지침·규정 부재’(29%), ‘담당자 미지정’(8.9%), ‘경제적 부담’(7%) 등도 재난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이유로 답했다. 창문, 난간 등에 안전시설(추락 방지 시설 등)이 없는 경우가 26%, 장애인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벨과 경광등 설치가 되지 않은 곳도 23%로 집계됐다. 복지부 쪽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장애인 219명을 대상으로 15가지 권리(이동·건강·금융서비스 이용·문화와 체육 활동 등) 차별 경험에 대한 일대일 심층 인터뷰도 진행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장애인 중 ‘이동 및 대중교통수단 이용’에서 차별을 겪었다고 답한 비중이 60.3%로 가장 많았다. 조사에 참여한 한 시각장애인은 “버스마다 교통카드 태그하는 곳이 달라서 찍는 데 시간이 걸려 기사가 화를 내기도 한다. 음성안내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아 (내려야 할 때) 못 내리는 경우도 있다”고 답변했다. 한 뇌병변 장애 당사자는 “버스 계단이 높아 대중교통 타기 어렵고 전동차로 버스를 타기 어려워 이용이 불편하다. 저상버스(바닥이 낮은 버스)도 아직은 많이 없어 이용하려면 언제,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잘 모른다”고 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장애 당사자들은 ‘시설물 접근·이용 및 비상시 대피’(32%), ‘금전 대출, 신용카드 발급,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금융서비스 이용’(21.9%), ‘문화·예술활동의 참여’(20.5%) 등 차별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밖에 교육기관 중에서 지난 2021년 장애 학생 혹은 장애인의 입학을 거부한 적 있는 기관은 0.6%로 조사됐다. 기관들은 거부사유로 ‘수업 자료 제공의 어려움’(50%), ‘교육 진행을 위한 보조기기의 부재’(33.2%), ‘정원 초과 혹은 마감’(16.8%) 등을 밝혔다. 장애 학생의 경우, 0.9%가 입학 거부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유형은 초등학교 30.8%, 어린이집·유치원 23.6%, 중학교 23.2%, 대학교 17.2%, 고등학교 11% 순이다. 이들이 통보받은 거부사유는 ‘장애 학생의 교육 진행을 위한 보조기기의 부재’가 43%로 가장 많았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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