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대한 전장연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장애인 개인예산제’가 올해 모의적용, 내년 시범사업을 거쳐 2026년 시행된다. 개인예산제는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정해진 복지서비스를 받는 게 아닌 일정 예산 한도 안에서 장애 당사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 총량과 종류가 부족한 상황임에도 예산 확보 방안이 빠져 있는 등 정책의 구체성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9일 국무총리실 소속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는 개인예산제 추진 방향 등이 담긴 ‘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년)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장애인 개인예산제 본격 도입에 앞서 올해 4개 지방자치단체 거주 장애인 120명(지방자치단체당 30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사업모델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중 하나는 기존에 지급하던 장애인활동지원 예산 중 일부(10% 내)를 떼어내 공공서비스(재활, 긴급돌봄 등)나 민간서비스(주택 개조, 주거환경 개선 등)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이다. 두번째는 기존 활동지원 예산 일부(20% 내)로 간호사·언어치료사·물리치료사·보행지도사 같은 인력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다. 염민섭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개인 예산 활용 범위는 올해 모의적용과 내년 시범사업을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개인예산제가 안착하기 위해선 공공서비스 다양화 및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짚었다. 농산어촌 지역에선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229개 전국 지자체 중 30곳은 발달장애 주간활동서비스 제공 기관이 아예 없었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의적용에 따라) 개인예산제를 쓰면 기존에 받던 활동지원 급여가 줄어드는 구조”라며 “지금도 활동지원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고 하는데, 총량을 늘리지 않으면 실효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인 정책 지출 비율은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2.14%의 3분의 1(0.72%)수준”이라며 “(개인예산제) 예산 반영 계획 없이 활동지원 예산을 활용하려는 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장애인복지법상 ‘장애’ 개념을 지금보다 넓히기로 했다. 한국은 유럽 국가 등에 견줘 장애 개념이 의학적 관점만 반영해 지나치게 좁게 규정돼 있다. 에이즈 감염인처럼 사회적 편견이나 환경으로 인해 사회활동 참여에 어려움을 겪는 고통 역시 장애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의미다. ‘2022 장애통계연보’를 보면 2021년 오이시디 31개국 평균 장애 출현율은 전체 인구의 24.3%인데, 한국은 5.39%에 그친다. 그러나 장애 개념 확대에 필요한 예산 규모는 이번 계획에서 제시하지 않았다. 조한진 교수는 “장애 유형이 확대된다는 건 그만큼 지원 예산이 커진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의미를 반영한 계획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장애 개념 확대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이 필요하다. 2021년 발의된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법률안·장애인권리보장법안(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에 이런 내용이 담겼고,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정부는 앞서 발표한 발달장애인 평생 돌봄 강화대책에 따라 내년 6월부터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 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 단체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돌봄 지원 확대는 의미 있다고 보면서도 ‘최중증’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2019년 7월 폐지된 ‘장애등급제’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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