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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전염위험 거의 없는데…기숙사 못 들어갑니다”

등록 2013-04-15 20:17수정 2013-05-08 08:31

[차별 대신 차이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5. 질병에 따른 차별
18살 ㄱ군에겐 비밀이 많다.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특수목적고에서 ㄱ군만 집에서 통학을 한다. 친구들은 알레르기 때문에 그런 줄 안다. 친지들은 ㄱ군이 기숙사에서 지내는 줄로 안다. 2010년 11월, 특목고 입시의 관문을 넘은 ㄱ군은 기숙사 입사를 거절당했다. “다른 학생들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ㄱ군은 비(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다.

“한창 사춘기인 아들이 차별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워 날마다 아이 엄마와 함께 눈물을 쏟았습니다.” ㄱ군의 아버지(46)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아들의 첫 좌절에 손 놓고만 있을 순 없었다. 전문가들이 “ㄱ군은 다른 학생들과 체육활동을 하거나 공동 식기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보탰다. 2011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비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인 학생의 기숙사 불허는 병력에 따른 차별”이라며 “ㄱ군의 기숙사 입사를 허용하라”고 권고했다.

‘입학·채용 차별’ 인권위 개선권고 강제성 없어

하지만 아버지의 노력은 소용없었다. 학교는 인권위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ㄱ군의 아버지는 “비형간염 보유자들은 군대도 현역으로 간다. 우리 아이는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는데도 불이익을 당했다”며 갑갑해했다.

ㄱ군만이 아니다. 간 질환자들의 모임인 ‘간사랑동우회’ 누리집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를 특목고에 보내고 싶은데 최종합격됐다가 신체검사에서 떨어질까봐 걱정”이라는 고민이 자주 올라온다. 시험을 통해 입학하는 여러 학교들은 아예 입학 절차에서 비형간염 보유자들을 배제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질병’은 천형이다. 비형간염과 에이즈(AIDS)가 그렇다. 정확한 감염 경로를 모르면서, 감염인들을 ‘전염성 환자’로 낙인찍는다. 사실 비형간염은 태아 수직감염이나 성적 접촉, 수혈 등을 통해 감염되며 일상생활에선 거의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에이즈 역시 ‘무시무시한 전염병’으로 바라보는 일반의 편견과 달리 그 전염성은 극히 낮다.

고용에서의 차별은 특히 우려스럽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여서다. 2009년 간사랑동우회가 간 질환자 386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4명(39.4%)은 “질병을 이유로 고용을 거부당하거나 채용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재직자는 16.2%가 질병을 이유로 임금·업무배치 등에서 불합리한 처우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에이즈 감염인들에게 구직은 더욱 좁은 문이다. 채용 신체검사나 직장검진에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검사가 포함될 수 있다. 이 검사는 일반 건강검진 항목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에이즈 감염인들은 직장에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 사실이 노출될 것을 꺼려 아예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에이즈 감염인의 14%(2011년 기준)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전락한 이유 중 하나다.

이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야말로 질병력에 의한 차별을 막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는 “기존의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도 차별에 대한 개선 권고는 가능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질적으로 차별을 개선하기 어렵다.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해당 기관이 인권위의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물리는 등 강제력이 확보돼 차별로 인한 피해 구제가 실효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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