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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죽음 같은 고통 잊고 부모·아들나라와 인연 찾고 싶어요”

등록 2015-11-15 19:27수정 2015-11-15 21:00

 왼쪽부터 진과 메리언.
왼쪽부터 진과 메리언.
[짬] 부모·입양아들 나라 찾은 진과 메리언
진이 사는 곳은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쪽으로 180㎞ 떨어진 인구 10만이 채 안 되는 노르셰핑이다. 그는 노르셰핑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제2바이올린 주자이다. 메리언은 노르셰핑에서 다시 남쪽으로 170여㎞ 떨어진 옌셰핑에 산다. 성냥이 처음 만들어졌다는 이 도시의 인구는 8만~9만명이다.

두 사람 모습은 너무 달랐다. 50대 초반의 진은 긴 검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까만 눈동자에 한눈에 봐도 길에서 마주치는 우리네 친근한 아낙의 모습이다. 70대 초반의 메리언은 옅은 푸른색 눈에 흰머리가 눈에 띄지만 짧은 곱슬머리 금발로 노년에 접어든 외국인이다. 진에게 한국이 부모님의 나라라면, 메리언에게도 한국은 먼 나라가 아닌 아들의 나라다. 진은 이번에 처음 한국을 찾았지만 메리언은 벌써 다섯번째다.

지난 8일 두 사람을 죽전 단국대 캠퍼스에 위치한 숲으로 둘러싸인 집현재에서 만나 2시간여 얘기를 나눴다. 집현재는 외부 손님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다. 두 사람이 구사한 ‘스웨덴 영어’는 진의 고국 방문을 주선한 한-스웨덴 친선협회의 박민선 부회장의 도움으로 알아들었다. 더 맑은 내과의원 원장인 박 부회장은 스웨덴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진, 68년 네살때 스웨덴에 입양
정신적 고통 딛고 바이올리니스트로
메리언, 74년 한국 남아 입양했지만
정체성 혼란 겪던 아들 27살에 자살
우울증 치료하던 병원서 진 만나

진, 한국서 협연뒤 자녀들도 합류
함께 입양의 상처 ‘치유여행’ 계획

검은 머리인 여성의 이름은 진 헤겔스트롬이다. 진은 그가 1968년 인천의 한 기관에 맡겨질 때 서류에 적혀 있던 한국 이름 김진영에서 따왔다. 네살의 어린아이에게도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으로 오던 날은 어제처럼 생생했다. “먹고사는 게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할머니가 버스에서 손을 흔들었어요. 한살짜리 애와 함께 비행기를 탔는데 돌보느라 애썼어요. 공항에서 양부모를 만났을 때는 안심이 되면서 나를 받아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의 입양 서류는 내용도 거의 없지만 정확하지도 않다고 한다. 그의 친부모는 입양 당시 이미 죽은 것으로 돼 있다. 진은 친부모가 자살한 것으로 들었고 할머니가 그를 키우다 맡긴 것으로 안다. 그는 한국을 잊은 채 잘 자랐다. 차별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놀림도 받았지만 선생님이 그를 지켜줬고 활달한 성격이라 농구 등 뭐든 잘했다. 음악을 좋아했다. 집에 오르간도 있었다. 음감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았다. 예테보리(고텐버그) 음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1학년 때인 19살에 첼로 전공인 3학년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엄청난 충격에 자살을 기도했다. 그 뒤 두번의 이혼을 했다. 삶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15년여 조울증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었어요. 내가 만난 의사만도 40~50명은 될 겁니다.” 메리언을 만난 것도 병원 치료를 받던 2002년이었다.

메리언 어스트롬은 41살 되던 지난 74년 여섯달 된 한국 갓난아이를 입양했다. 프레드리크 어스트롬이다. 그러나 그 아들은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001년 27살의 청년은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메리언이 진을 만나기 몇개월 전의 일이다. 그 뒤 메리언은 아들이 왜 그랬는지를 알기 위해 아들의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을 만났으며, 다른 가족들에게도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살방지 모임에 적극 참여했다.

많은 입양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프레드리크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그가 자기가 누구이며 자신의 부모는 누구인지 찾기 시작한 것은 메리언 부부가 미국에서 생활할 때였다. “(아들은) 미국 버지니아에서 한국 친구들을 만나면서 태어난 한국에 가고 싶어했어요. 96년인가 3주 동안 한국 여행을 했고 8개월여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도 배웠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아들은 죽기 전인 2001년 한국을 다시 찾았다. 이때 생모를 만났는데 몸을 파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첫번째 자살을 기도했다. 메리언은 이런 일들을 역시 미국에 입양된 아들 친구에게 한참 뒤 들었다. 아들은 양부모에게는 얘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아들 친구는 단지 아들을 혼자 두지 말라는 말만 했어요.”

아들의 우울증은 미국에서 사귄 일본 여학생과의 사랑이 일본 쪽 부모의 반대에 부닥치면서 악화된 듯하다. 그는 죽기 직전 일본에 있는 이 여자친구한테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메리언 부부는 집의 사과나무에서 아들을 발견했고, 그의 방에는 사진과 편지들이 널려 있었다. 그가 가족들에게 남긴 메모에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입양인들은 커가면서,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인 부모로부터의 ‘버림’이라는 의문에 직면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이 자신들을 ‘진짜’ 한국 사람으로 생각할 때 큰 위안을 받는다. 두번 버림을 받지는 않았다고 자위하는 것이다.

메리언 역시 아들의 죽음 뒤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의 고통을 몰랐던 자신을 자책하지 않았고, 그걸 알려주지 않은 아들을 야속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명을 앗아갈 만큼 아픈 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이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치료하기 위해 경험을 공유해야 합니다.”

14년 전 일이지만 얘기를 하면서 메리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그때마다 진이 위로하며 휴지를 건넸다. 자매 같기도, 모녀 같기도 한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는 건 한국인 입양 부모이자 한국인 입양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다 큰 상처를 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은 17일 단국대 난파음악홀에서 열리는 음대생들 졸업연주회에서 바이올린 협연을 할 예정이다. 또 진의 세 자녀 가운데 아들, 딸이 한국으로 와서 합류해 이번달 말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진은 이번 여행이 자신의 가족이 모국과의 인연을 찾아가는 첫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시간들을 메리언도 함께한다.

글·사진 강태호 선임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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