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지키는 그물망 짜자
④ ‘안전한 체벌’은 없다
④ ‘안전한 체벌’은 없다
“상처 받음, 무서움, 속상함, 겁이 남, 외로움, 슬픔, 성남, 버려진 것 같음, 무시당함, 화남, 혐오스러움, 끔찍함, 창피함, 비참함, 충격받음.”
‘체벌’에 대한 아이들의 기억이다. 국제아동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 영국 본부는 2001년 아이들이 누군가로부터 맞았던 경험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기록했다. 아이들은 40개가 넘는 다양한 형용사로 체벌의 끔찍함을 드러냈지만 ‘미안함’(sorry)을 느꼈다고 말한 아이는 없었다. 체벌이 교육적으로 별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큰 피해만 입힌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연구다.
‘세이브더칠드런’ 조사분석 결과
교육적 효과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 정서적 큰 피해만 입혀 일부 부모들 자녀학대하고도
“내 자식 가르치려는 것” 항의
‘체벌 통한 훈육’ 인식 바꿔야 개정 아동복지법 체벌 부당함
첫 명문화했지만 선언적 수준
민법에도 ‘필요땐 징계’ 조항 남아 가정 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체벌을 통해 아이를 훈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체벌과 학대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있는 것이 아닌데다 체벌의 교육적 효과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돼 있는 만큼, 가정 내 체벌 금지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혹한 폭행으로 7살 아들을 숨지게 하고 주검을 훼손한 ‘부천 초등생 사건’의 최아무개(34)씨도 경찰 조사에서 “아들에 대한 체벌과 제재가 적절한 훈육이라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안전한 체벌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학대로 판단되는 사건 10건 중 8건은 부모에 의한 학대인데도 학대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 보면 대부분의 부모들에게 학대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 ‘내 자식 내가 가르치겠다는데 당신들이 뭔데 개입하느냐’는 식으로 저항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아동학대 사건을 들여다보면, 체벌이 누적되면서 아이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학대와 체벌의 경계를 정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아동학대를 막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미 1979년 “아동은 어떠한 경우에도 체벌을 받거나 인격을 훼손하는 행위를 당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하며 처음으로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한 스웨덴에서는 1975년 딸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힌 아버지가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체벌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엔 국민 70%가 반대하는 등 저항이 컸지만 2011년 조사에선 92%의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행위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데 동의하는 걸로 나타났다. 아울러 1980년 조사 때는 28%의 부모가 “아이를 때린 적이 있다”고 밝혔지만, 2011년엔 3%만 “체벌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정 내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국가는 점점 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아동체벌 근절을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아동체벌 근절 국제 이니셔티브)의 자료를 보면, 2015년 12월 기준 48개국에서 가정 내 체벌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아동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독일 등 상대적으로 아동복지가 발달한 유럽국뿐 아니라 뉴질랜드·코스타리카 등 다양한 국가들이 동참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도 지난해 2월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제5조에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선 안 된다”는 조항을 넣었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을 때리는 행위가 중대한 범죄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체벌의 부당함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선 진전이지만 처벌 조항 등이 없어 선언적 입법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아동체벌 근절 국제 이니셔티브는 한국의 개정 아동복지법에 대한 세이브더칠드런 한국 본부의 질의에 “가정 내 체벌 금지라고 해석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체벌이라는 단어를 명시적으로 쓰지 않은 것은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민법 제915조에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남아 있는 것도 한계로 꼽혔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학대 문제의 심각성에 견줘 그간 처벌은 관대하게 이뤄져왔다. 지난 18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박사가 내놓은 ‘아동학대의 실태와 학대피해아동 보호법제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은 모두 9만5622건이다. 가해자는 부모가 82.7%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검찰에서 처분한 572건을 표본추출해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확인해보니, 정식재판에 넘긴 사건은 32.2%에 그쳤다. 벌금형 약식기소가 12.7%였고 나머지는 기소유예(30.3%)나 혐의 없음(13.4%)으로 처리됐다. 세이브더칠드런 쪽은 “20대 국회에서 가정 내 아동체벌 금지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오는 4월까지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끝> 엄지원 전정윤 기자 umkija@hani.co.kr
교육적 효과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 정서적 큰 피해만 입혀 일부 부모들 자녀학대하고도
“내 자식 가르치려는 것” 항의
‘체벌 통한 훈육’ 인식 바꿔야 개정 아동복지법 체벌 부당함
첫 명문화했지만 선언적 수준
민법에도 ‘필요땐 징계’ 조항 남아 가정 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체벌을 통해 아이를 훈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체벌과 학대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있는 것이 아닌데다 체벌의 교육적 효과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돼 있는 만큼, 가정 내 체벌 금지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혹한 폭행으로 7살 아들을 숨지게 하고 주검을 훼손한 ‘부천 초등생 사건’의 최아무개(34)씨도 경찰 조사에서 “아들에 대한 체벌과 제재가 적절한 훈육이라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안전한 체벌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학대로 판단되는 사건 10건 중 8건은 부모에 의한 학대인데도 학대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 보면 대부분의 부모들에게 학대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 ‘내 자식 내가 가르치겠다는데 당신들이 뭔데 개입하느냐’는 식으로 저항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아동학대 사건을 들여다보면, 체벌이 누적되면서 아이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학대와 체벌의 경계를 정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아동학대를 막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미 1979년 “아동은 어떠한 경우에도 체벌을 받거나 인격을 훼손하는 행위를 당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하며 처음으로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한 스웨덴에서는 1975년 딸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힌 아버지가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체벌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엔 국민 70%가 반대하는 등 저항이 컸지만 2011년 조사에선 92%의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행위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데 동의하는 걸로 나타났다. 아울러 1980년 조사 때는 28%의 부모가 “아이를 때린 적이 있다”고 밝혔지만, 2011년엔 3%만 “체벌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정 내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국가는 점점 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아동체벌 근절을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아동체벌 근절 국제 이니셔티브)의 자료를 보면, 2015년 12월 기준 48개국에서 가정 내 체벌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아동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독일 등 상대적으로 아동복지가 발달한 유럽국뿐 아니라 뉴질랜드·코스타리카 등 다양한 국가들이 동참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도 지난해 2월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제5조에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선 안 된다”는 조항을 넣었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을 때리는 행위가 중대한 범죄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체벌의 부당함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선 진전이지만 처벌 조항 등이 없어 선언적 입법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아동체벌 근절 국제 이니셔티브는 한국의 개정 아동복지법에 대한 세이브더칠드런 한국 본부의 질의에 “가정 내 체벌 금지라고 해석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체벌이라는 단어를 명시적으로 쓰지 않은 것은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민법 제915조에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남아 있는 것도 한계로 꼽혔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학대 문제의 심각성에 견줘 그간 처벌은 관대하게 이뤄져왔다. 지난 18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박사가 내놓은 ‘아동학대의 실태와 학대피해아동 보호법제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은 모두 9만5622건이다. 가해자는 부모가 82.7%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검찰에서 처분한 572건을 표본추출해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확인해보니, 정식재판에 넘긴 사건은 32.2%에 그쳤다. 벌금형 약식기소가 12.7%였고 나머지는 기소유예(30.3%)나 혐의 없음(13.4%)으로 처리됐다. 세이브더칠드런 쪽은 “20대 국회에서 가정 내 아동체벌 금지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오는 4월까지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끝> 엄지원 전정윤 기자 umkija@hani.co.kr
■ 가정 내 체벌을 비롯한 모든 아동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국가들
스웨덴(1979)
핀란드(1983)
노르웨이(1987)
오스트리아(1989)
키프로스(1994)
덴마크(1997)
라트비아(1998)
크로아티아(1999)
독일 불가리아 이스라엘(2000)
투르크메니스탄(2002)
아이슬란드(2003)
루마니아 우크라이나(2004)
헝가리(2005)
그리스(2006)
네덜란드 뉴질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토고 우루과이 베네수엘라(2007)
코스타리카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몰도바(2008)
알바니아 콩고 케냐 폴란드 튀니지(2010)
남수단(2011)
카보베르데 온두라스 마케도니아(2013)
안도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2014)
브라질 에스토니아 몰타 나카라과 산마리노(2014)
베냉 아일랜드 페루(2015) 자료: 모든 종류의 아동체벌 근절을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 (www.endcorporalpunishment.org)
핀란드(1983)
노르웨이(1987)
오스트리아(1989)
키프로스(1994)
덴마크(1997)
라트비아(1998)
크로아티아(1999)
독일 불가리아 이스라엘(2000)
투르크메니스탄(2002)
아이슬란드(2003)
루마니아 우크라이나(2004)
헝가리(2005)
그리스(2006)
네덜란드 뉴질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토고 우루과이 베네수엘라(2007)
코스타리카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몰도바(2008)
알바니아 콩고 케냐 폴란드 튀니지(2010)
남수단(2011)
카보베르데 온두라스 마케도니아(2013)
안도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2014)
브라질 에스토니아 몰타 나카라과 산마리노(2014)
베냉 아일랜드 페루(2015) 자료: 모든 종류의 아동체벌 근절을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 (www.endcorporalpunishmen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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