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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모두가 하나됐던 ‘2000년 법정’처럼 2020년 시대적 요구에 머리 맞대자

등록 2020-06-09 05:01수정 2020-06-09 08:12

위안부 운동을 말하다
전문가 릴레이 기고 ⑨양미강(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총장)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을 만들어가는 일부터

그때 심정은 죽더라도 2000년법정을
끝내고 죽어야 할 정도로
우리 모두에게 부담은 매우 컸고
일종의 사명감으로 뭉쳐 있었다
그렇게 2000년법정은
한국과 아시아 시민 모두의 운동이 되었다

물론 활동가와 피해자의 관계를 재정립하
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네 편, 내 편 가르는 진영논리에 기대어
피해자를 폄훼하거나 단체를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아시아각국 비정부단체들이 시민법정의 형태로 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아시아각국 비정부단체들이 시민법정의 형태로 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 불거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논란 속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마포쉼터 소장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16년간 피해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분이기에 참담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지난 30년 동안 이 운동은 피해자와 활동가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이들과 함께하는 국내외 시민들의 크고 작은 노력이 있었기에 세상이 이나마 변화되었다. 그 과정에 20년 전, 2000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2000년법정)이 있었다. 일본 법원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정식 국제재판도 이루어지지 않은 배경에서,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판사 출신과 저명한 국제법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국제법정에서 진실과 정의를 확인받으려 한 것이다. 2000년법정은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기 위한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가장 강력한 방식의 책임자 처벌 운동이었다.

2000년 6월, 서울 서대문역 근처에 있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의 불은 24시간 켜져 있었다. 12월에 있을 2000년법정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법정은 한국의 정대협과 일본, 필리핀 등 10개국이 공동주최하고 아시아 피해자 70여명과 한국 참가자 200명을 포함하여 해외 참가자 1000여명 등이 참여하는 대규모 민간법정이었다. 당시 정대협의 실무인력은 총괄책임자인 필자와 당시 20대 후반의 스태프 3명이 전부였다. 부족한 인력은 공동대표와 실행위원, 연구자들로 구성된 한국 검사단이 각기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6개 지역의 문화제, 11개 전국의 대학들과 모의법정, 전국에서 200여명의 참가단을 모집하는 등 1인 10역이라 해도 부족한 시간들이었다. 어느 누구도 부족한 재정이나 부족한 인력을 탓하지 않고 누구 일이라 미루지 않고 2000년법정을 완수하기 위해 한마음이 되었다. 그때 심정은 죽더라도 2000년법정을 끝내고 죽어야 할 정도로 우리 모두에게 부담은 매우 컸고 일종의 사명감으로 뭉쳐 있었다. 그렇게 2000년법정은 한국과 아시아 시민 모두의 운동이 되었다.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난 남과 북의 생존자 할머니들이 남북 공동기소를 위해 나란히 앉아 있었고, 마지막 판결에서 ‘히로히토 유죄’라는 판결이 나올 때 함께 손을 번쩍 들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머니들은 5일 동안 법정 기간 내내 자리를 지켰고, 다른 피해국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자신이 당한 고통을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의 문제로 몸소 느끼고 체화했다. 이렇게 할머니들은 자신의 경험을 보편화하면서 활동가들과 함께 있음을 고마워하셨다.

2020년 5월, 이용수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했다’로 시작된 이번 논란은 2000년법정의 시작과 마무리 5년 동안 정대협의 실무 책임자로 일해온 필자에게는 지난 세월 묻어둔 슬픔과 기쁨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위안부 운동은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수많은 사람과 단체가 국가를 초월해서 연대하면서 성장해왔다. 이 중심에 생존자들이 있었고, 이분들은 우리의 스승, 부모, 동료이기도 했다.

2000년법정은 진상 규명과 법적 해결이라는 큰 틀을 제시하고 뼈대를 만들었다. 그 뒤 다양한 활동 등이 이루어졌으나 뼈대 사이사이를 모두 메꾸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수많은 빈 공간을 메꾸는 일이 어찌 시민단체만의 몫이겠는가? 이번 논란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채워야 할 공간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몇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지난 30년의 운동을 상세하게 복기하면서 혹시 우리 안에 그동안 해왔던 관성은 없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다 보면 이제까지 해왔던 방식에 익숙하기에 꼼꼼히 챙겨야 할 것을 놓칠 수도 있다. 둘째, 국민적 눈높이에서 재정과 조직, 사업 등 전반에 걸쳐 투명성과 책무성에 기반한 강도 높은 혁신안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2000년법정이 21세기를 맞이하는 시대적 요구였던 것처럼, 2020년의 시대적 요구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공론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내야 한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 시대에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일은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활동가와 피해자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넷째, 네 편, 내 편 가르는 진영논리에 기대어 피해자를 폄훼하거나 단체를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근거 없는 가짜뉴스들, 마구잡이식 보도들,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외면한 인신공격성 발언들, 진위와 상관없이 색깔론을 덧씌워 단체를 공격하는 일은 문제 해결

양미강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총장
양미강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총장

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섯째, 정치와 운동을 분리시켜야 한다.

이번 논란이 윤미향 정의연 전 이사장의 국회 입성이 계기가 된 만큼 국회에서는 여성평화인권재단 설립 등 미진한 입법조치를 취하고, 시민운동에서는 이용수 할머니가 강조한 것처럼 청소년 역사교육과 시민교육을 강화하는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정부도 그간의 피해자들에 대한 대우가 적절했는지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일본 정부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현재 열일곱분만이 살아계시기에 더욱 그렇다.

30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는 자연스러운 시간이다. 이제 시민들이 함께했던 2000년법정을 되돌아보며,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을 통해 시즌2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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