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11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집 앞에 놓인 조화가 예쁘다며 걸음을 멈춘 그의 모습을 당시 강재훈 <한겨레> 선임기자가 찍었다.
변희수 하사님, 당신은 정말 당당하고 용감했습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월 군에서 쫓겨난 뒤 인터뷰를 요청했지요. 몸과 마음이 지쳐서 당분간 아무도 안 만나겠다는 얘기를 전해듣고는 사람들한테 나서기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해도 존중한다는 뜻을 전하고는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한달 뒤 피로를 회복했다면서 연락해왔습니다. 지난해 3월11일 서울 마포구 신촌에 있는 군인권센터에서 만났으니 딱 1년 전입니다.
그날 인터뷰(2020년 3월21일치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하하”)에서 당신은 그랬죠. “끝까지 싸울 겁니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를 쟁취하고, 차별 없는 군을 만들기 위해서 기갑부대의 모토인 ‘기갑 선봉’답게 선봉에 나가서 싸울 거예요”라고요. 전차 조종을 좋아한 당신다운 답변이었습니다. “군인연금 대상이 아니어서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며 “게임하고 쇼핑하고 평범하게 지낸다”고 했습니다. “저는 집 밖은 잘 안 가는 집순이입니다. 컴퓨터랑 닌텐도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아요. 웹툰도 좋아해요.” 23살 청년의 밝고 유쾌한 생활상이 그려져서 빙그레 웃었지만,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자신감과 용기의 표징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기에 안도감도 들었답니다.
당신은 그런 당당함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심과 공동체 삶에 대한 이해도 깊었습니다. “군이 뒤통수를 쳤으니까요”라며 군 고위간부들에 대한 배신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료 및 후배 전차병들을 위해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전차에 꼭 에어컨을 달아주라는 겁니다”라며 군과 정부에 장비 개선을 당부했죠. 중학생 시절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항의하면서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일본의 욱일승천기를 길바닥에 깔고 시민들에게 밟고 가도록 한 일 등에 대해 “지금 생각하면 너무 국수주의적인 활동이었”다고 성찰하는 대목도 인상 깊었습니다. “다수라고 하는 사람들도 분명 소수자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노동조합원이라든지, 다른 소수 종교라든지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럴 때 자기가 다수라고 생각하면서 소수자 차별에 눈감으면, 자신들이 소수자로 박해받을 때 결국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라고 한 이야기는 또 얼마나 핵심을 찌르는 말인지요.
당차고 웅숭깊은 당신의 싸움에 연대하고 싶어 기사가 나간 뒤에 가끔 안부 전화나 문자를 했죠. 당신을 응원하는 내용의 글이나 기사가 있으면 보내주기도 했고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육군과 국방부에 당신의 전역처분을 취소하라는 권고를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초가 마지막이었더군요. 제가 보낸 기사 링크에 당신은 여느 때처럼 “앗… 넴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밝게 답했지요.
그런 당신이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갑작스러운 비보 앞에 아직까지 정신이 멍하답니다. 길고양이에게 낮게 다가가 교감을 나누고, 신촌 골목길의 한 주택 대문 앞에 놓인 꽃 화분이 모조라는 것을 알고도 걸음을 멈추고 예뻐하던 당신을 이제 볼 수 없다니요. 그날 문자만이 아니라 통화를 해서 근황을 묻고 했더라면 조금은 힘이 됐을까라는 생각, 진즉에 더 적극적인 연대를 왜 표시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듭니다.
“좌절하지 않겠다”던 당신이 결국 스러지고 만 것을 생각하면 분노도 치밉니다. 인권위의 잇따른 권고조차 막무가내로 무시하는 육군, 촛불혁명으로 탄생했으면서도 군의 차별적 태도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는 문재인 정부, 174석이라는 다수 의석을 가졌음에도 차별금지법을 국회 상임위에 상정조차 하지 않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그런 것(퀴어퍼레이드)들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안철수)는 등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정치인들. 익명의 혐오세력보다도 이들이 더 중한 가해자입니다.
변희수님, 그리고 그보다 일주일 앞서 세상을 등진 김기홍님(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 당신들은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겁니다. 희수님이 살던 집 현관 앞에 놓였던 술 한 병과 조의금 봉투 하나를 보셨잖아요? 그런 작은 뜻들이 모여 차별과 혐오의 벽을 꼭 무너뜨리고 말 겁니다. 그곳에서는 편히 쉬세요.
김종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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