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당곡중 학생들이 지난달 20~21일 이 학교 급식에 친환경 쌀을 공급하고 있는 전남 나주 생산단지를 방문해 벼베기 활동을 하고 있다.
[교실 밖 교실] 서울 관악구 당곡중 ‘가격 인상 없는 친환경 급식’
산지와 직접 계약 유통비 거품 빼
인근 학교 ‘공구’ 추진 농민과 윈윈
벼베기·천연염색 체험학습도 연계 서울 관악구 당곡중 학생들은 올 3월부터 급식 때 친환경 무농약쌀로 지은 밥을 먹고 있다. 김치는 친환경 배추에다 양념만으로 맛을 낸 김치를 먹는다. 육류로는 집에서도 먹기 어려운 한우가 제공된다. 급식비가 많이 올랐겠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급식비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한 끼당 2400원이다. 친환경 급식을 하면 학부모 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열쇠는 ‘급식 재료 직거래’에 있다. 당곡중은 학교운영위원회의 노력에 힘입어 올해부터 급식을 위탁에서 직영으로 바꾸면서 급식 재료를 직거래한다. 공고를 통해 식재료 납품업자를 선정할 때, 국내산 친환경 농축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하며 급식비가 오르지 않도록 값이 저렴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학부모들의 실사를 거쳐 주식인 쌀과 잡곡은 전남 나주시가 직접 생산자들을 모아 꾸린 ‘나주농협연합사업단’과 납품 계약을 맺었다. 나주시는 전국 최초로 학교급식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친환경 학교급식 생산단지를 조성하는 등 가장 모범적인 급식재료 생산·공급체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김치는 경북 풍산농협에서, 한우는 목우촌에서 공급받기로 결정했다. 특히 쌀은 일반미보다 싼 20kg당 4만3000원에 공급받는데, 이는 나주시의 파격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주시는 학교급식 지원 조례를 통해 현지 학교에 제공하는 가격 그대로 쌀을 납품하는 것은 물론 서울까지 운반하는 데 드는 유통비도 부담하기로 했다. 나주시가 이처럼 파격적인 지원을 결정한 데는 당곡중 학운위의 공동구매 제안이 큰 영향을 끼쳤다. 앞으로 직영으로 전환하는 인근 학교들을 묶어 직거래 공동구매를 추진할 계획이니, 대랑공급의 발판을 마련하는 셈 치고 싼 값에 친환경 쌀을 공급해줄 것을 제안한 것이다. 당곡중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와 같은 ‘가격 인상 없는 친환경 급식’ 추진의 주역으로 단연 이빈파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관동학운협) 공동대표를 꼽는다.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를 설립하는 등 급식운동에 앞장서 온 이 대표는 지난해 당곡중 학운위에 지역위원으로 참여해 직영 전환을 주도한 데 이어, 올해는 학운위원장으로 선출돼 친환경 급식을 이끌고 있다. ‘친환경 학교급식 직거래 공동구매 컨소시엄’ 아이디어를 낸 이도 이 대표다. 그는 “직거래 공동구매를 할 경우 생산자는 ‘계약에 따른 계획생산’으로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고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학교급식 공급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으며, 소비자는 생산이력을 알 수 있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얼굴 있는 농산물’을 유통비 거품이 빠진 싼 값에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얘기다. 이 대표가 나주시에 한 공동구매 제안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당곡중에 이어 올 9월부터 직영으로 전환한 인근 봉원중이 쌀과 김치, 한우를 당곡중과 같은 업체에서 구매하고 있고, 내년 3월 직영으로 전환할 예정인 남강중·고교도 학운위에서 공동구매 참여를 결정했다. 이들 네 학교는 내년부터 공식적으로 공동구매단을 꾸려 친환경 급식재료를 납품받을 계획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당곡중 사례를 본받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지역 여러 학교에서 당곡중을 방문해 직거래와 공동구매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이들 학교 가운데 도봉구 신도봉중은 지난 9월 직영으로 전환하면서 나주에서 친환경 쌀을 직거래로 구매하고 있다. 직거래 공동구매는 급식의 질 개선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에서도 의미있는 실험이다. 당곡중 급식소위 위원인 백인석 교사는 “직거래가 정착될 경우 노작교육이나 자연·문화체험 활동 등 생산지와 연계한 교육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아이들이 자기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당곡중은 도농교류 학습 차원에서 지난달 20~21일 학생 40여명이 나주를 방문해 벼베기와 천연염색 등 체험활동을 했다. 권중삼 학년교육부장은 “농가에서 민박을 하면서 아이들이 할머니·할아버지들의 따뜻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떡메치기, 깜깜한 밤에 별 보기 등 아이들이 서울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공동구매와 함께 관악구 학교급식 지원 조례 제정에도 힘을 쏟고 있다. 나주시가 관악구 급식 조례가 제정돼 지원이 이뤄질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쌀을 싼 값에 공급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 관악구의회에는 관동학운협이 제안하고 민주노동당 이동영 구의원이 지난 9월18일 대표발의한 친환경급식 지원 조례가 제출돼 있는 상태다. 조례는 국내산 친환경 농산물 사용에 필요한 경비 지원, 생산지 현장체험학습 및 도농교류 프로그램 지원, 무상급식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사진 당곡중 제공
기초자치단체 63% ‘급식조례’ 제정 2000년대 초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풀뿌리운동으로서의 학교급식운동이 거둔 가장 괄목한 만한 성과는 학교급식 지원 조례 제정이다. 학교급식 전국네트워크와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이 주축이 된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한 전국운동본부’가 조례 제정 운동을 이끌었다.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자료를 보면, 2003년 10월 광역단체로는 처음으로 전남에서 조례가 제정·공포된 이래, 현재 전국 열여섯 광역단체 모두 조례를 제정했다. 기초단체에서는 전남 나주에서 2003년 9월 처음으로 조례가 제정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조례 제정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전국 234개 기초단체 가운데 현재 조례가 제정된 곳은 153곳이다.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전북을 시작으로 경남·경기·서울·충북 조례가 행정자치부와 교육감 등에서 잇따라 제소했다. ‘국내산 농산물 사용’을 명시해 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에 위배된다는 게 제소 이유다. 결국 대법원은 2005년 9월 전북 조례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전북도는 지난 6월 ‘지역산’이라는 용어 대신 ‘우수 식재료’라는 규정을 넣은 새 조례를 제정했다. 나머지 네 곳의 조례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학교급식에 가장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지역은 전남으로, 올해 362억원을 투입해 모든 학교에서 100% 친환경 급식을 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조례는 전남(22곳), 경북(23곳), 충남(16곳) 등은 모든 기초자치단체에서 조례가 제정됐다. 반면, 서울은 25개 자치구 중 조례가 제정된 곳이 한 곳도 없다. 이종규 기자
인근 학교 ‘공구’ 추진 농민과 윈윈
벼베기·천연염색 체험학습도 연계 서울 관악구 당곡중 학생들은 올 3월부터 급식 때 친환경 무농약쌀로 지은 밥을 먹고 있다. 김치는 친환경 배추에다 양념만으로 맛을 낸 김치를 먹는다. 육류로는 집에서도 먹기 어려운 한우가 제공된다. 급식비가 많이 올랐겠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급식비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한 끼당 2400원이다. 친환경 급식을 하면 학부모 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열쇠는 ‘급식 재료 직거래’에 있다. 당곡중은 학교운영위원회의 노력에 힘입어 올해부터 급식을 위탁에서 직영으로 바꾸면서 급식 재료를 직거래한다. 공고를 통해 식재료 납품업자를 선정할 때, 국내산 친환경 농축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하며 급식비가 오르지 않도록 값이 저렴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학부모들의 실사를 거쳐 주식인 쌀과 잡곡은 전남 나주시가 직접 생산자들을 모아 꾸린 ‘나주농협연합사업단’과 납품 계약을 맺었다. 나주시는 전국 최초로 학교급식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친환경 학교급식 생산단지를 조성하는 등 가장 모범적인 급식재료 생산·공급체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김치는 경북 풍산농협에서, 한우는 목우촌에서 공급받기로 결정했다. 특히 쌀은 일반미보다 싼 20kg당 4만3000원에 공급받는데, 이는 나주시의 파격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주시는 학교급식 지원 조례를 통해 현지 학교에 제공하는 가격 그대로 쌀을 납품하는 것은 물론 서울까지 운반하는 데 드는 유통비도 부담하기로 했다. 나주시가 이처럼 파격적인 지원을 결정한 데는 당곡중 학운위의 공동구매 제안이 큰 영향을 끼쳤다. 앞으로 직영으로 전환하는 인근 학교들을 묶어 직거래 공동구매를 추진할 계획이니, 대랑공급의 발판을 마련하는 셈 치고 싼 값에 친환경 쌀을 공급해줄 것을 제안한 것이다. 당곡중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와 같은 ‘가격 인상 없는 친환경 급식’ 추진의 주역으로 단연 이빈파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관동학운협) 공동대표를 꼽는다.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를 설립하는 등 급식운동에 앞장서 온 이 대표는 지난해 당곡중 학운위에 지역위원으로 참여해 직영 전환을 주도한 데 이어, 올해는 학운위원장으로 선출돼 친환경 급식을 이끌고 있다. ‘친환경 학교급식 직거래 공동구매 컨소시엄’ 아이디어를 낸 이도 이 대표다. 그는 “직거래 공동구매를 할 경우 생산자는 ‘계약에 따른 계획생산’으로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고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학교급식 공급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으며, 소비자는 생산이력을 알 수 있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얼굴 있는 농산물’을 유통비 거품이 빠진 싼 값에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얘기다. 이 대표가 나주시에 한 공동구매 제안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당곡중에 이어 올 9월부터 직영으로 전환한 인근 봉원중이 쌀과 김치, 한우를 당곡중과 같은 업체에서 구매하고 있고, 내년 3월 직영으로 전환할 예정인 남강중·고교도 학운위에서 공동구매 참여를 결정했다. 이들 네 학교는 내년부터 공식적으로 공동구매단을 꾸려 친환경 급식재료를 납품받을 계획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당곡중 사례를 본받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지역 여러 학교에서 당곡중을 방문해 직거래와 공동구매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이들 학교 가운데 도봉구 신도봉중은 지난 9월 직영으로 전환하면서 나주에서 친환경 쌀을 직거래로 구매하고 있다. 직거래 공동구매는 급식의 질 개선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에서도 의미있는 실험이다. 당곡중 급식소위 위원인 백인석 교사는 “직거래가 정착될 경우 노작교육이나 자연·문화체험 활동 등 생산지와 연계한 교육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아이들이 자기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당곡중은 도농교류 학습 차원에서 지난달 20~21일 학생 40여명이 나주를 방문해 벼베기와 천연염색 등 체험활동을 했다. 권중삼 학년교육부장은 “농가에서 민박을 하면서 아이들이 할머니·할아버지들의 따뜻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떡메치기, 깜깜한 밤에 별 보기 등 아이들이 서울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공동구매와 함께 관악구 학교급식 지원 조례 제정에도 힘을 쏟고 있다. 나주시가 관악구 급식 조례가 제정돼 지원이 이뤄질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쌀을 싼 값에 공급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 관악구의회에는 관동학운협이 제안하고 민주노동당 이동영 구의원이 지난 9월18일 대표발의한 친환경급식 지원 조례가 제출돼 있는 상태다. 조례는 국내산 친환경 농산물 사용에 필요한 경비 지원, 생산지 현장체험학습 및 도농교류 프로그램 지원, 무상급식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사진 당곡중 제공
기초자치단체 63% ‘급식조례’ 제정 2000년대 초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풀뿌리운동으로서의 학교급식운동이 거둔 가장 괄목한 만한 성과는 학교급식 지원 조례 제정이다. 학교급식 전국네트워크와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이 주축이 된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한 전국운동본부’가 조례 제정 운동을 이끌었다.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자료를 보면, 2003년 10월 광역단체로는 처음으로 전남에서 조례가 제정·공포된 이래, 현재 전국 열여섯 광역단체 모두 조례를 제정했다. 기초단체에서는 전남 나주에서 2003년 9월 처음으로 조례가 제정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조례 제정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전국 234개 기초단체 가운데 현재 조례가 제정된 곳은 153곳이다.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전북을 시작으로 경남·경기·서울·충북 조례가 행정자치부와 교육감 등에서 잇따라 제소했다. ‘국내산 농산물 사용’을 명시해 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에 위배된다는 게 제소 이유다. 결국 대법원은 2005년 9월 전북 조례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전북도는 지난 6월 ‘지역산’이라는 용어 대신 ‘우수 식재료’라는 규정을 넣은 새 조례를 제정했다. 나머지 네 곳의 조례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학교급식에 가장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지역은 전남으로, 올해 362억원을 투입해 모든 학교에서 100% 친환경 급식을 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조례는 전남(22곳), 경북(23곳), 충남(16곳) 등은 모든 기초자치단체에서 조례가 제정됐다. 반면, 서울은 25개 자치구 중 조례가 제정된 곳이 한 곳도 없다. 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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