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침묵의 카르텔 깨자 (상) 교실안 권력관계
말린다는 응답 57.2%→31%
두려움 때문에 방관·침묵
일진과 친분 따라 계급 형성
“부당한 권력관계 돌려놔야”
말린다는 응답 57.2%→31%
두려움 때문에 방관·침묵
일진과 친분 따라 계급 형성
“부당한 권력관계 돌려놔야”
학교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공간은 학교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201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폭력 피해를 당하는 장소는 교실, 복도, 화장실 등 학교 안이 75.2%를 차지했다. 피해를 당하는 시간 역시 학교의 쉬는 시간, 점심시간, 수업시간 등 학교 안이 68.8%나 됐다. 그런데 학교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두 부류의 학생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2009년 학교폭력이 일어난 한 중학교 1학년 교실. 당시 이 반 학생이던 ㄱ군이 학교폭력 담당 교사에게 낸 ‘교실 안 권력 피라미드’(그래픽 참조)에는 반 학생들이 모두 7가지 ‘계급’으로 분류돼 있다. 서열 4위 계급에 속하는 ㄱ군이 그린 권력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일짱’은 ‘모든 일을 시키는 아이’다. 2인자도 ‘심부름을 시키고, 그것을 거절하면 때리는 아이’지만, 일짱에게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어 2위에 머물렀다. 셋째 서열은 일짱과 친한 아이들로, 일짱의 ‘후광 효과’에 힘입어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괴롭힌다. 그리고 넷째~여섯째 서열 아이들은 더 높은 서열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그들의 심부름을 해주면서, 동시에 아래 서열의 아이들에게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맨 아래인 일곱째 서열 아이들은 ‘찌질이’로 불리는 가장 약한 아이들이다. 당시 이 반의 학교폭력 문제를 조사했던 교사는 “가해자는 서열의 가장 위에 있는 ‘일짱’만이 아니었다. 일짱과 친해지고 싶거나,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또는 피해를 입은 경험 때문에 침묵하거나 또다른 가해자가 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었다”며 “이런 ‘학급 카스트’를 이해하지 않고는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실에서는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 한달간 여러 또래 그룹이 생기는데, 이들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ㄱ아무개군은 “공부를 잘하거나, 말을 재밌게 해서 인기가 있거나, 힘이 센 아이 등 ‘잘나가는’ 친구들이 반의 주류가 되고, 그 주위에 조금 모자란 애들이 모여 그들을 따르고, 그보다 못한 아이들은 비주류가 된다”며 “교실에서 애들을 보면 ‘쟤는 주류다’, ‘쟤는 비주류다’ 이렇게 다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ㄴ아무개양도 “담배를 피우거나 친화력이 있는 이른바 ‘노는’ 애들이 반에서 ‘일진’이 되고, 일진과의 친분관계에 따라 반에 계급이 생긴다”며 “서로 동등한 관계라기보다는 일종의 상하관계로, 일진 그룹이 반 문화를 주도한다”고 말했다. 이런 또래 그룹 간의 관계가 권력화되면서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면, 가해·피해 학생뿐 아니라 가해를 당하면서 피해를 주고 이에 동조하거나 침묵·방관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학교폭력이 발생한다.
김대유 경기대 겸임교수(교직학과)는 “학교폭력의 가해자는 이를 주도하는 ‘일진’뿐 아니라 이를 알면서도 방관·방조하는 나머지 전체 학생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실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2007~201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학교폭력 목격시 대응행동’에 대한 질문에 ‘모른척한다’는 대답이 2007년 35%에서 2010년 62%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말리거나 대응한다’는 응답은 57.2%에서 31%로 줄었다. 지난해 12월 청주의 한 중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진 학생을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때리다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7명의 학생은 모두 “모르겠다.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는 “심각한 폭력이 가해지고 있는데도 아이들이 도와주지 못한 걸 보면, 가해자가 학교 내 위계 서열의 상위에 있는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박종철 학생생활국장은 “학급의 권력관계를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학생,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해자에게 동조하는 학생, 피해자가 될까봐 무관심한 척하는 학생, 가해자의 행동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는 학생이 보인다”며 “이런 권력관계를 그대로 놔두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상담해도 다시 폭력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학급 내 부당한 권력관계를 평등하고 평화로운 관계로 돌려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지배자·실력자·추종자·은둔자’ 4가지 유형
학생들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권력관계에 따라 학교 폭력의 가해자, 피해자가 될 뿐 아니라 돕거나 방관하며 학교 폭력에 개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엄명용 성균관대 교수 등이 지난 2009년 서울·경기 초중고 7개 학교 학생 18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학생들은 힘이 세거나, 리더십이 있거나, 힘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등의 기준에 따라 지배자, 실력자, 추종자, 은둔자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됐다. 지배자는 힘이 세거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등 반에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자원이 많고 힘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으로 흔히 ‘노는 아이’로 표현된다. 또래 관계의 강자다. 이와 정 반대로 권력을 가질 능력도 없고 힘을 추구하지도 않는 학생군은 은둔자 유형이다. 권력을 가질 능력이 있지만 힘을 추구하지 않으면 실력자로 분류되며, 권력을 가질 능력이 없으면서 힘을 추구하면 추종자가 된다. 응답자 중에는 추종자(50.8%)가 가장 많았고 지배자(27.2%), 실력자(19%), 은둔자(2.9%)가 뒤를 이었다. 네가지 유형은 실제 학교 폭력을 경험했을 때 다른 반응을 보인다. 지배자 유형의 학생들은 가해자, 조력자, 가해 행동을 격려하는 강화자가 될 가능성이 많았다. 추종자 유형의 학생들은 힘을 얻기 위해 지배자의 비위를 맞추며 ‘권력의 언저리’에 있다보니,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거나 이를 묵인할 개연성이 높았다. 반면 은둔자 유형의 학생들은 ‘약자’라 피해 가능성이 높았다. 실력자 유형의 학생들은 뚜렷한 경향성은 없었으나, 방관자나 피해자를 도와줄 수 있는 방어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응답이 많은 편이었다. 엄명용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이 위치한 권력관계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지에 맞춰 지배자에게는 친구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 법을, 영향력이 있는 실력자에게는 방어자 역할을, 추종자와 은둔자에게는 피해 사실을 알리는 법을 가르치는 등 맞춤식 예방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 ‘노란봉투 검은돈’ 총액은?…여 실세들 조직적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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