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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졸고 있다고 막말에 폭행”…교사 폭력 ‘미투’로 번진 학폭

등록 2023-03-05 14:55수정 2023-03-06 02:47

온라인에 퍼지는 학창시절 교사 고발글
“성인 돼도 잊기 어려워
고발글로 뒤늦게 공감대 형성”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20년이 지났지만 이름도 기억나네요. XXX선생님. 저를 졸고 있다고 애들 앞에서 여러 번 주먹으로 폭행했던 게 트라우마로 남아 아직도 생생하네요.”

“33년 전 XX초 6학년 담임 XXX. 촌지 안 주는 애들만 골라 실내화 더럽다는 이유로 물에 담가서 집어 던졌는데. 돌아가셨어도 지옥에 사시면 좋겠네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이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방관하고 막말과 폭행을 가했던 담임 교사를 18년 만에 찾아가 “선생님은 제 인생 망치실 때 그런 걱정 하셨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댓글 창은 드라마의 내용보다 ‘뒤늦은 고발’을 결심한 이들의 호소로 가득했다. 몇몇 누리꾼은 자신이 다닌 학교와 교사 이름까지 실명으로 밝혔다.

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드라마 <더 글로리>와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의 아들 사건으로 최근 학교폭력이 화제에 오르면서, 학교폭력의 방관자거나 가해자였던 교사를 폭로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길게는 20∼30년 전 기억을 상기하며 “다른 이들이 용기 내는 것을 보고 경험을 공유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지은(40)씨는 최근 에스엔에스(SNS)에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향해 <더 글로리> 주인공의 어투로 ‘친애하는 선생님께’라는 제목의 편지글을 썼다. 당시 부모님이 하던 사업이 망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학교 화장실 칸마다 ‘김지은네 집 망해서 잘됐다’와 같은 낙서가 적혔다.

이러한 친구들의 괴롭힘을 참다못해 담임 선생님에게 말하자 돌아온 것은 “네 이야기니까 네가 직접 지워라”라는 말이었다. 이후에도 “못 참겠으면 네가 전학을 가라”고 종용하던 선생님의 말은 김씨에게 평생 상처로 남았다. 김씨는 “유일하게 말할 어른이 선생님이라고 생각해 용기 낸 것이 무색해지는 반응이었다”라며 “당시 나를 괴롭혔던 친구들이랑은 오히려 나중에 서로 화해하고 친해졌는데, 선생님의 언어 폭력은 성인이 된 지금도 잊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박시안(39)씨도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난 담임 선생님의 일화를 에스엔에스에 적었다. 일과시간 도중 생리 불순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가게 된 그에 대해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 앞에서 “여자 고등학생 혼자서 산부인과를 가는 게 말이 되냐”며 모욕적인 뉘앙스로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취업 후 첫 출근날 “선생님에게 인사를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장에 전화를 걸어 학교로 돌아와 인사를 하게 시키는 등 정서·언어적 폭력을 수차례 겪었다고 기억한다.

박씨는 “주변 사람들은 이제 잊으라고 하지만, 누가 고통받자고 나쁜 기억을 일부러 떠올리겠냐”며 “이렇게라도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폭력을 가한 선생들도 벌을 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조금이나마 응어리가 해소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전날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자신을 사범대 학생이라고 밝힌 익명의 게시자가 “저 또한 학교폭력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며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폭력 없는 환경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즐거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는 내용의 자필 편지를 올렸다.

동급생의 가해행위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수수방관과 언어폭력도 학교 폭력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는 모양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드라마를 보며 심판 역할을 해야 하는 교사에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의식이 생기게 된 것”이라며 “다만 온라인 고발과 같은 사적 복수가 문제 해결의 주요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약자와 공동체를 배려하는 가치관을 지닌 사회로 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라고 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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