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관악사) 청소노동자 ㄱ(59)씨가 숨진 채 발견된 뒤 ‘과로’와 ‘갑질’ 논란이 불거졌지만, 서울대가 유족 참여를 배제한 ‘자체 조사’를 고수하며 여전히 소극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을 청소노동자와 중간관리자 사이의 문제로만 다루는 모양새인데, 그 배경엔 ‘법인 직원’과 ‘관악사 직원’으로 나뉘는 서울대의 이중적 고용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ㄱ씨가 숨진 지 한 달이 지난 25일 현재 ㄱ씨 남편과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이번 사건에 대한 공동조사와 서울대의 사과, 책임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는 학교 인권센터 자체 조사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인권센터는 최근에야 조사를 시작했다. 서울대 본부는 청소노동자들이 모욕감을 느꼈다는 ‘필기시험’이 상부로 보고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시험을 주관한 ㄴ팀장으로부터 필기시험과 관련한 보고를 받은 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인의 ‘일탈’이라는 취지다.
서울대의 이런 대응은 학교의 고용구조가 ‘법인 직원(정규직)’과 ‘자체 직원(무기계약직·비정규직)’으로 이원화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은 2018년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으로 학교에 직접 고용됐지만, 기존 ‘법인 직원’과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관악학생생활관 관장에게 발령과 인사 관리를 받는 무기계약직과 비정규직이다. 법인직원과 대비되는 ‘자체직원’ 또는 ‘관악사 직원’으로 불리고 있다.
정성훈 민주노총 서울대시설분회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16명 가운데 13명은 무기계약직, 3명은 6개월·1년 단위로 계약하는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서울대 직원 정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교육부가 지원하는 ‘인건비’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관악학생생활관의 ‘운영비’에서 임금이 지출된다.
학교에 직고용된 뒤에도 이들은 법인직원들과의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다고 토로해왔다. 법인직원이 호봉과 직급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것과 달리, 자체직원들은 일괄적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직급과 승진 체계도 없다. 이런 문제는 지난해 10월22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대 법인직원과 자체직원 사이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하자,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좋아지고는 있지만 원하는 방향으로까지는 가지 못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자체직원’들의 목소리가 학교에 닿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청소노동자들은 ㄴ팀장을 제외한 행정실장, 학생처장 등 관리자들과 직접 소통할 자리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정성훈 분회장은 “매번 인력 충원을 요청하지만, 번번이 묵살됐다. 어느 선에서 묵살됐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청소노동자는 “대부분의 지시는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교 본부에서 시키는 건가 보다’ 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이번 사건의 수습을 시작으로 학교 본부가 좀 더 책임 있는 태도로 노동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한다. 공인노무사인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박문순 서울본부 법규정책국장은 “대법원 판례 등을 보면 기숙사 관장은 사용자가 될 수 없다. 법적으로 법인인 서울대가 실질적 사용자”라고 지적했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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