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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8년 기다린 ‘전철 승강기’ 약속, 받아든 것은 3천만원짜리 소장뿐

등록 2021-12-21 17:33수정 2022-03-30 11:39

‘2004년까지 모든 역사 승강기설치’ 시장들은 약속했지만
내년에도 약속무산 확실시…올해 시위엔 교통공사 손배소까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차에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차에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년 전 서울 오이도역 지하철 리프트 사망사고로 촉발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소송전으로 번지고 있다. 십수년간 대중교통 이용에 제약을 받아온 장애인 단체와 ‘정상운행’이 목표인 서울교통공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관련법 통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사가 지난달 2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서울장차연) 등을 상대로 제기한 3천만원짜리 손해배상청구 소송 소장을 보면, 공사는 지난 1월22일~11월12일까지 서울역, 혜화역, 광화문역 등에서 이뤄진 7번의 이동권 보장 시위로 금전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공사는 “피고(장애인 단체)들은 고의로 수차례 지하철 운영을 지연시켜 교통 방해를 하고, 원고(공사)의 업무를 방해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운행 계획 대비 실 운행감소로 인한 운임 감소분, 열차 지연으로 인한 반환금액, 임시열차 운영 인건비 등의 손해”의 일부인 3천만원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장애인 단체 쪽에서는 법률대리인단을 꾸려 소송에 대응할 방침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를 둘러싼 법적 다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전임 서울시장들의 약속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리프트 사망사고와 관련 소송도 꾸준히 제기됐다. 2017년 신길역 휠체어리프트 버튼을 누르려다 추락해 숨진 고 한경덕씨의 유족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1, 2심 재판부가 모두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공사는 소송 중 “리프트에 문제가 없었다”며 책임을 피하려 했지만, 법원은 공사가 휠체어 리프트 호출 번호를 위험한 곳에 설치했다는 점, 계단 수가 74개나 되는데도 추락 보호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점 등에 책임이 있다며 유가족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2018년 5명의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공사를 상대로 지하철역 5곳을 특정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며 소송을 내기도 했지만, 지난해 원고 패소가 확정됐다. 법원은 이들 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도, 공사가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며 엘리베이터 설치를 강제하지 않았다.

전국장애인 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과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에서 ‘기획재정부 장애인 이동권 반대 규탄 결의대회’ 시위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전국장애인 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과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에서 ‘기획재정부 장애인 이동권 반대 규탄 결의대회’ 시위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 때문에 장애인 단체 쪽에서는 “약속을 이행하라”며 지하철 시위에 나서고 있다. 2002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서울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또한 재임 시절에 ‘2022년까지 100% 설치’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시 지하철 전체 역사 278개 가운데 16개 역은 여전히 ‘1역사 1동선(출구에서 승강장까지 연결된 통로)’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서울시가 내년도 예산안에 12개 역사 공사비는 책정하고 4개 역사(고속터미널·까치산·복정·상일동)에 대해선 엘리베이터 설치 예산을 반영하지 않아, ‘2022년 엘리베이터 100% 설치’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서울시 쪽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면 인근 빌딩을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이 부족하다고 나온 까치산역과 아직 설계가 완료되지 않은 역에 대해선 예산 편성을 하지 못했다”며 “관련 주무부서에서 승강편의시설 설치 계획을 수립하면서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목표 시점을 2024년 12월로 수정했다”고 말했다. 약 20년 전에 2004년으로 계획했던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목표가 2024년으로 20년이나 후퇴한 것이다.

약속 이행이 계속 미뤄지면서 장애인 단체와 서울교통공사의 대립은 심화하고 있다. 나동환 변호사(전장연 상근변호사)는 “(100% 엘리베이터 설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장애인 단체가 강력시위를 하게 됐는데, 그에 대한 봉쇄 조치로 (서울교통공사가)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장애인 단체의 주장도 이해하지만, 공사의 사명은 지하철 정상운영이다. 장애인 단체 시위 이후에 바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게 아니고,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장애인 단체는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포괄적으로 다룬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개정안이 시급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에는 버스 대·폐차(차령이 만료된 버스를 다른 버스로 교체하는 것)때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개정안이 발의돼있다. 국회는 오는 22일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에서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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