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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치하는 분들이여, 발목이 붙잡힌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등록 2022-03-05 09:29수정 2022-03-30 11:25

[한겨레S] 이라영의 비평
심상정의 마지막 1분 발언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22일 지하철 1호선 수원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22일 지하철 1호선 수원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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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를 앞두고 거친 몸짓들이 난무한다. 대선 후보들이 힘찬 주먹질과 발길질, 혹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등의 거침없이 활동적인 몸을 보여주는 이유는 사회문제를 날려버릴 수 있는 강하고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비장애 중년 남성들의 이 과시적인 몸짓에 상당히 위화감을 느낀다. 이들이 드러내는 강한 남성성과 비장애 신체성은 ‘정상적 권력’의 외형을 규정짓는다. 대통령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거친 몸동작을 보여주는 동안 이 사회의 또 다른 몸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버스를 타자!

지난 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사진전이 있었다. ‘버스를 타자, 장애인이동권 21년의 외침’이라는 제목의 전시에는 말 그대로 버스를 타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담은 사진들이 펼쳐져 있다. 사진 속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차도 위에서 커다란 버스 앞을 위험하게 가로막고 있다. 장애인들은 “버스를 타자”고 21년째 외치는 중이다.

21년이라는 시간은 누군가의 죽음이 알려진 이후부터의 시간이다. 2001년 1월22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한 장애인 부부가 지하철역에서 장애인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해 한명이 사망하고 한명이 다쳤다. 그날 이후 장애인들은 저상버스와 모든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해 투쟁해왔다. 그사이에도 단순히 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02년 발산역에서, 2006년 신연수역에서, 2008년 화서역에서, 2017년 신길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려던 시민이 계단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집 밖을 나가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사이에 정권은 네번 바뀌었다.

‘케이(K)-로켓’이라 불리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6월에 2차 시험 발사될 예정이다. 17~18세기에 유럽 국가들이 제 기준으로 신대륙을 찾아 나섰던 대항해 시대처럼, 오늘날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들은 우주라는 영토를 향해 간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고작 “버스를 타자”고 소리쳐야 한다. 위로 올라가는 로켓을 쳐다보느라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사람을 보지 않는다. 한국은 저상버스 보급률은 지난해 기준 30% 미만으로 유럽이나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진다. 이동권은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와 연결된 기본적인 생존권이다.

20여년, 집 밖을 나가기 위한 싸움
이동권은 생존을 위한 기본 권리

2001년 오이도역 사고 이전에도 목숨 걸고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목소리를 냈던 이들이 있었다. 장애해방열사들의 투쟁을 담은 책 <유언을 만난 세계>(오월의봄)는 사회의 외면과 차별 때문에 죽음을 택했던 여덟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가운데 1984년 끝내 음독자살한 김순석 열사는 당시 서울시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유서로 남겼다. 손기술이 좋아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지만 집 밖을 다니기 어려운 그는 노동할 수 없었다. 장애인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변방의 존재였고 ‘무능력한 신체’로 취급받았다. 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 ‘문턱’과 싸워야 했다. 한뼘 높이의 턱 때문에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다니는 ‘인도’로 올라갈 수 없는 휠체어 사용자 김순석은 “나는 사람이 아닌가” 되묻는다. 김순석은 유서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는 서울의 거리는 저의 마지막 발버둥조차 꺾어놓았”다는 사실을 전하며 장애인들이 드나들 수 있는 화장실 하나라도 만들어달라 호소한다. 오늘날 곳곳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과 작은 경사로 하나조차 누군가가 목숨 걸고 싸운 결과이다.

목소리 사라지는 구조를 없애야

유언으로 만날 게 아니라 살아서 목소리 낼 때 이 사회가 제대로 듣는다면 좋으련만, 지금도 장애인들의 시위에 대해 언론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은 ‘출근길 발목’이다. 이동권을 위해 싸우는 장애인들 앞에 던져지는 ‘발목’은 참으로 문제적 표현이다. 정작 발목이 붙잡힌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회가 장애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은 출근길 혼잡 시간에 그들이 나타날 때다. 이때 장애인들은 ‘시민’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여겨진다. 엄밀히 따지면 이 순간에도 장애인의 목소리를 비장애인들이 듣는 것은 아니다. 광화문에서, 서울역에서 아무리 천막농성을 해도 ‘시민의 출근길’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비장애인에게 백색소음처럼 들린다. 방해하지 않던 백색소음이 출근길에 등장하면 비로소 소음으로 다가올 뿐이다.

100여년 전 미국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의 시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 이후, 이는 운동 캠페인 구호로 자주 등장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좋은 의미로 이 구호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는 인도의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 베트남계 미국 소설가 응우옌비엣타인 등에 의해 오늘날 꾸준히 비판받는 구호이기도 하다. 로이는 목소리 없는 자들은 없다고 주장했고, 응우옌은 목소리 없는 자들을 위해 목소리 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없어지는 그 구조를 부숴버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들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목소리 없는 자들은 없다. 듣지 않거나, 침묵을 강요당할 뿐이다.

‘출근길 발목’으로 취급받는 시위
정작 발목 잡힌 이들은 누구인가

지난달 21일 열렸던 대선 후보 티브이 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마지막 1분 발언에서 장애인 이동권 예산에 대해 언급했다. 나흘 뒤 또다른 토론에서는 군 성폭력 피해자인 고 이예람 중사의 이야기를 전했다. 2017년 대선 토론에서도 심 후보는 1분 발언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말하는 데 사용했다. 주도권 토론에서 다른 후보들은 심상정에게 질문하지 않았기에 말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후보다. 그럼에도 소중한 1분 동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응답을 했다.

정치는 누구에게 응답해야 하는가. 해고에서 복직까지 37년이 걸린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퇴직 연설을 전해주고 싶다. “정치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루 6명의 노동자를 죽인 기업주의 목소리가 아니라 유족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어제 동료가 죽은 현장에 오늘 일하러 들어가는 노동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차별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들 그들이 목숨 걸고 하는 말을 들어야 차별이 없어집니다.”

예술사회학자.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2020) <타락한 저항>(2019) 등의 저자.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평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비평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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