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복지식당’ 서태수(왼쪽)·정재익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
12년 동안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분노와 답답함은 그를 영화감독으로 만들었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그의 목소리를 영화로 구현하는데 함께한 비장애인이 있다. 오는 14일 개봉을 앞둔 영화 <복지식당>을 공동으로 연출한 정재익·서태수 감독의 이야기다.
2010년 교통사고로 경추손상을 입고 지체장애 4급을 판정받은 정재익 감독은 “너무 답답해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정 감독은 사고 직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를 가지게 됐지만, 경증 장애인 5급 판정을 받게 됐다. 한 등급 차이는 장애인의 세계에 들어선 정 감독에게 큰 벽으로 다가왔다. 장애인 콜택시, 휠체어 할인, 취업서비스 등 여러 혜택에서 모두 제외된 그는 결국 등급을 바꾸는 행정 소송까지 진행했고, 4급 판정을 다시 받았다. 그가 겪은 장애인등급제의 모순과 복지 사각지대는 고스란히 영화의 소재가 됐다. (장애인등급제는 다양한 장애유형을 무시하고 등급을 자의적으로 나눠 각종 복지 서비스에서 장애인들을 소외시킨다는 비판을 받아 2019년 7월 폐지됐다. 현재는 중증·경증만 구분한다.) 영화의 주연배우는 비장애인이지만, 조연과 스텝 등 전체 제작진의 절반은 정 감독이 평소 알고 지내던 장애인들이다. 영화 ‘복지식당’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함께 만든 공동작품이다.
“장애인 세계도 비장애인 세계와 같아”…언더도그마 시선 정면 반박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카페에서 만난 영화 ‘복지식당’ 정재익(왼쪽)·서태수 감독. 박지영 기자
영화는 장애인 당사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장애인 사회의 부조리를 솔직하게 고발한다. 두 감독은 ‘불편한 현실’을 다룬 건 장애인을 향한 뿌리 깊은 편견을 거두기 위해서라고 했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글과 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출근길 시위’ 대응 문건에 담겨 논란이 된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언더 도그마’ 프레임에 빠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장애인을 바라봐 달라는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출근길 시위를 주도하는 장애인단체와 이를 지지하는 주장에 대해 ‘장애인이 절대 선자라는 프레임’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정 감독은 “장애인들 중에서도 권력을 이용해 같은 장애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장애인들이 있다. 장애인 세계에서도 권력이 존재하고 선악이 공존한다. 비장애인의 세계와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동권 문제 등 장애인의 문제를 ‘장애인이 선하다’는 식으로 볼 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의 생존권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에서도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은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준석 대표를 향해 정 감독은 “장애인의 ‘장’ 자도 모르는 것 같다. 이동권은 생존의 문제로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 수단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일할 수도, 누군가를 만날 수도 없다. 그냥 고립되는 거다. 그동안 이동권을 박탈당해온 장애인들의 삶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 감독은 장애인 콜택시를 제때 이용하지 못해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의 병간호를 포기해야 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두 감독은 장애인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돼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어울려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서 감독은 “지금은 비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장애인들을 흔히 볼 수 없는 환경이다. 장애인식 개선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자주 만나 같이 일하고, 밥먹고,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가 장애 인식 개선이다. 그러려면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거리로 나올 수 있게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들의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장애인 정책을 만드는 정부와 정치권이 정책 ‘수요자’ 중심에서 생각하고 현실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바람에서다. 정 감독은 “장애인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세심한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13일 오후 3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와 이준석 대표는 <제이티비시>(JTBC) 프로그램 ‘썰전라이브’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주제로 생방송 토론을 한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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