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참석, 총리 및 장관 인사청문회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을 앞두고 있는 검찰 수사-기소 분리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내용을 살펴본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잃은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평가가 나왔다. 검찰 직접수사 대상이 일부 축소되기는 했지만, 검찰권력 핵심인 특수검사들의 수사영역과 권한 대부분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바꿔치기 사·보임’을 계기로 20일 넘게 전국 검사들의 집단반발을 부른 결과 치고는 소리만 요란했다는 얘기다. 오히려 경찰이 불송치 결정한 고발 사건에서 고발인의 이의신청을 봉쇄하는 등 경찰권 남용 길을 터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28일 대검찰청은 전날 밤 본회의에 상정된 수정안 내용 분석과 대응책 마련에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브리핑 없이 A4 2장 분량 입장문을 냈다. 곧바로 여러 건의 반박자료를 내고 “위헌” 브리핑을 했던 27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계산’할 것이 많다는 방증이다. 다만 ‘수사→기소→공소유지 불가분성’을 주장하는 검찰은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를 분리하도록 한 것은 여전히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법이 통과되면 수사-기소 분리 부분에서 변화가 클 것같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직접수사 대상이 좀 줄어드는 것 외에 송치사건 처리 등에서 지금과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특별수사 부분은 사실 바뀐 게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다른 수사를 못하니 새 정부에서 부패·경제 2대 범죄에 포커스를 맞춰 집중적으로 수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수정안은 검찰이 직접 수사 개시할 수 있는 대상을 기존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 2대 범죄로 축소했다. 또 경찰이 자발적으로 송치한 사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한 없이 지금처럼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법조인은 “수사실무에 적용해 보면, 경찰이 기업 수사를 한 뒤 횡령 혐의로 송치해도 검찰은 정치인 뇌물 혐의 등 부패·경제범죄 관련 인지수사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열린 셈”이라고 했다. 수정안에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시기가 빠지면서 당분간 “특수 전성시대가 계속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일원 검찰인권위원회 위원장(전 헌법재판관)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찰인권위원회 제5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강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검찰 수사-기소 분리 법안 입법 과정에 대해 “다수당의 일방적인 의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비판했다. 연합뉴스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를 ‘부패·경제범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에서 ‘부패·경제범죄 등’으로 바꾼 대목을 두고도 직접수사 범위를 일부 확장할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평가다. 조순열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은 “입법 취지에 비춰볼 때 ‘등’의 의미가 열거하지 않은 나머지 범죄까지 무한정 확대해 수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해도 명확하게 ‘중’으로 쓰는 게 맞았다. 대통령령을 정하기에 따라 논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검찰은 2020년 수사권 조정 논의 때도 ‘등’을 확대 해석해 ‘돈이 오고 간다’며 마약범죄까지 경제범죄에 포함시키는 대통령령을 만들었다. 검찰청법 대통령령 소관부처는 법무부다. 이번 수정안이 윤석열 정부 법무부에 기존 부패범죄(11개 항목)·경제범죄(17개 항목) 정의를 다시 하게 만드는 빌미를 줬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런 식이면 이번에 삭제된 공직자범죄 일부를 부패범죄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했다. 가령 부패방지권익위법은 ‘부패행위’에 공무원 직권남용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 정의를 적극 준용해 대통령령을 바꾸면 채용비리·사퇴강요 등 대표적 공직자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
반대로 수정안에는 선거범죄 등 수사권이 확대된 경찰의 권한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이 갑자기 들어가 법조계와 시민사회 반발이 일고 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무혐의 종결)에 대해 고소인이 아닌 ‘고발인’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선관위, 국세청,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 등 기관고발 사건뿐만 아니라 시민단체가 현 정권 등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고발했을 때도 재수사를 요청할 통로가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김희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공익 사건을 고발하는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국가인권위, 국민권익위 등 고발권을 가진 기관들조차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의신청을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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