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장애인들이 지하철 탑승 시위를 마친 뒤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광호 신임 서울경찰정장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들의 ‘지하철 출근길 시위’에 대해 “국민 발을 묶어서 의사를 관철하게 하는 상황”이라며 “엄격한 법 집행으로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전장연은 “정부는 장애인들도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경찰을 통해 ‘엄격한 법 집행’만 말한다. 경찰이 갈등을 조장한다”고 반발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20일 취임 뒤 처음 연 기자간담회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등을 요구하며 매주 월요일 아침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진행되는 장애인단체들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대해 “국민 발을 묶어서 의사를 관철하게 하는 상황들에 있어서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한 법질서 확립이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김 청장은 “법질서 확립이란 불법 행위에 대해선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며 “최근 전장연도 오늘 아침 사다리까지 동원해서 이뤄진 (경찰의) 즉각 조치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 사법적 조치가 필요한 부분은 신속한 수사를 통해 시민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아침 8시께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 도착해 승강장 출입문에 사다리를 걸치고 시위를 이어가자 지하철 보안관과 경찰관을 투입해 사다리를 빼내는 등 강제 이동 조치에 나섰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경찰과 협의한 뒤 사다리를 빼내고 지하철에 다시 올라타 시위를 이어갔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과 관련해 기획재정부가 면담에 응할 경우 지하철 시위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가 면담 요구를 계속 거부하는 가운데 이날 김 청장이 강경대응 입장을 밝힌 것이다.
“국민의 발 묶었다”, “지구 끝까지 찾아가 사법처리하겠다” 등의 표현을 쓰며 강경한 법 집행 뜻을 밝힌 경찰을 두고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는 “공권력의 협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한겨레>에 “우리가 아침 출근하는 시민들의 발목을 잡은 건 맞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 (경찰이 비장애인 시민들 편만 들면서) 한쪽만의 강경한 법 집행을 말하는 건 법 집행 불평등을 야기하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김 청장의 표현이 이례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지구 끝까지 따라가 사법처리한다는 건 보통 극악한 성범죄자한테 쓰는 표현인데, 장애인 시위에 그런 표현을 써서 놀랐다”고 했다.
경찰은 최근 지하철 시위를 진행한 장애인 활동가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날 김 청장은 전장연과 관련한 수사 상황에 대해 “현재 수사 대상은 모두 11명으로 그중 1명을 조사했고 나머지 인원에 대해선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 조금 더 신속하게 수사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포함한 전장연 활동가들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철도안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와 혜화경찰서, 영등포경찰서 등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박 대표는 “저희가 했던 행동에 대해서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지고, 조사하면 조사받을 용의가 있다. 도망가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헌법에 명시된 장애인들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외면한 정부의 책임은 없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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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