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삼각지역-천막 11시간 거리에서 ‘70번째 삭발’ 조효영 소장 133명 장애인·비장애인 삭발투쟁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요구 삭발식 100일차를 맞은 30일 오전 9시께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는 도중 뒤쪽으로 그동안 삭발식에 참여자들의 사진을 모은 펼침막이 보인다. 고병찬 기자
지난 3월30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처음 시작한 장애인단체들의 삭발투쟁이 30일 100번째를 맞았다. 매일 평일 아침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삭발식이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구체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삭발식 100일차를 맞은 30일에도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 50여명은 “장애인 활동가들이 모두 삭발할 때까지 정부는 우리를 무시할 것인지 궁금하다”며 “장애인들이 더이상 죽지 않고,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예산으로 보장해달라”고 외쳤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들의 삭발투쟁에는 그동안 전국 각지의 장애인·비장애인 133명이 참여했다. 조효영(52) 김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도 그중 한 명이다. 경남 김해에 사는 조 소장은 지난 7월13일 밤 9시30분 서울행 기차를 탔다. 삭발식이 시작되는 아침 8시까지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 제때 도착하기 위해서다. 자정이 넘어 서울역에 도착한 조 소장은 애초에 숙소 찾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지체장애인인 조 소장은 전동휠체어를 타는데, 서울역 인근 숙소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없는 곳들이 많고 화장실도 비좁아 전동휠체어로 이용할 수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엔 활동보조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는 중구 서울시의회 앞 전장연의 천막 농성장을 찾아 밤을 보냈다. 결국 11시간을 거리에서 보낸 끝에 그는 ‘70번째 삭발자’가 될 수 있었다.
조 소장이 ‘삭발’을 위해 홀로 400여㎞를 이동한 건 서울·경기 지역보다 너무나도 열악한 지역의 교통약자 이동권 현실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 2008년 4월 폐암 선고를 받고 입원 중인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부산의 한 병원에 다녀야 했다.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 부산까지 가야 했지만, 예약하는 것조차 어려워 아픈 어머니를 제때 돌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해 11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조 소장은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그는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애인콜택시로 지역 간 이동은 힘들고, 저상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은 수도권보다 열악하다”며 “지자체의 장애인 예산이 확대되는 게 절실하다”고 했다.
지난 7월14일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70번째 삭발자로 나선 조효영(52) 김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조 소장처럼 전국 각지에서 삭발식에 참여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100번의 삭발을 영상으로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출근길 지하철 시위와 삭발식 현장을 촬영하고 영상 편집을 담당하는 민아영(29) 전장연 활동가는 “이젠 이 삭발식을 중단할 수는 없게 된 것 같다”고 했다. 23살부터 장애운동을 한 민 활동가는 최근 지하철 출근길 시위와 삭발식을 통해 지난 21년 동안 쌓여왔던 장애인 활동가들의 차별 저항 의지가 강하게 표출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또 차별을 경험한 이들의 연대도 이뤄진다고 민 활동가는 생각한다. 그는 “이번 투쟁은 단순히 장애인 차별과 혐오에 대한 저항 운동만이 아니다. 삭발에 참여하신 분들이 나이나 성별 등 일상생활에서 겪는 다층적인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이를 공감하는 비장애인 시민들이 온라인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연대한다’는 메시지도 많이 보내주신다”고 했다. 민 활동가는 “장애인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 이젠 정부가 검토가 아닌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라고 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연금 및 장애수당 인상 △일자리 확대 등 소득보장 강화 △활동지원·긴급돌봄 등 돌봄 확대를 담은 2023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도 이날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저상버스·특별교통수단·휠체어 탑승가능버스 등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사업 지원 예산을 전년 대비 2배 늘려 2246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삭발식을 마친 뒤 “2023년도 예산안에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은 기존 1조7405억원에서 1조9919억원으로 2514억원만 증액됐는데, 이는 자연증가분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활동지원 대상자는 늘어나는데 그 대상자를 지원할 예산도 따라가지 못하고, 활동지원사들의 최저임금 인상률도 올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동권 예산에 대해선 “이미 (지난해)교통약자법 개정으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된 상황에서 이를 시행하기 위한 지원 예산 만큼만 증액된 것으로, 현 정부가 이동권 보장 위해 예산 증액했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전장연은 다음달 9일 제36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승하차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항로영상활동가모임’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촉구 삭발투쟁 100일간 133명의 삭발 기록>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