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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살인에 이른 3년 스토킹…집요한 불법촬영·협박에도 구속은 없었다

등록 2022-09-15 21:00수정 2022-09-16 14:36

수백차례 전화·문자 “만나달라”
지난해 불법촬영물 협박 긴급체포
법원 “주거지 일정” 구속영장 기각
경찰, 2차고소땐 영장 신청 안해
‘피해자 위해 우려’ 구속사유 돼야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역무원이 한 남성에게 살해당한 다음 날인 15일 오후 서울 사건 현장 앞에 시민들이 놓고 간 꽃이 놓여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역무원이 한 남성에게 살해당한 다음 날인 15일 오후 서울 사건 현장 앞에 시민들이 놓고 간 꽃이 놓여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동료 여성 역무원을 스토킹하다 살해한 전아무개(31)씨는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스토킹 범죄의 전형적 행태를 보여줬다. 피해자 쪽은 전씨가 2019년부터 수백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급기야 피해자를 불법촬영한 뒤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까지 했고, 검찰이 징역 9년의 중형을 구형한 이 사건 선고를 하루 앞두고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최근 반복된 스토킹 살인 범죄 패턴을 그대로 보여줬지만, 이번에도 희생을 막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스토킹 범죄를 여전히 일반 범죄처럼 다루는 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법원·경찰, 구속영장 판단 논란

숨진 역무원 ㄱ(28)씨는 입사 동기인 전씨로부터 2019년부터 지속적으로 “만나달라”는 등의 스토킹에 시달렸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겠다”는 협박까지 당했다. ㄱ씨는 서울서부경찰서에 촬영물 등 이용 협박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고소했고, 경찰은 이튿날 전씨를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 역시 구속이 필요하다고 보고 영장을 청구했지만, 서울서부지법은 전씨의 주거지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서혜진 변호사(여성가족부 여성폭력방지위원)는 15일 “구속영장 사유에 주거지 일정 등의 요건 이외에도 ‘피해자 위해 우려’와 ‘범죄 중대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는데, 협박범에 대해 위해 우려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게 법원의 엄청난 실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1월 ㄱ씨는 전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추가 고소했다. 경찰은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지만, ‘2차 고소’ 때는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앞서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가 주거지 일정과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이었는데, 2차 때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아 재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발을 막는 것이 중요한 스토킹 범죄에 성격이 다른 불법촬영물 영장 기각 사유를 적용한 셈이다.

지난 2월 발생한 서울 구로 스토킹 살해 사건에서는 검찰 단계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바 있다. 당시 경찰, 검찰, 법원의 서로 다른 판단이 스토킹 범죄 대응 실패로 이어지는 만큼 스토킹 위험도를 공동으로 판단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후 변화는 없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여성 역무원을 평소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가 살해하는 사건이 14일 저녁 벌어졌다. 15일 저녁 사건 현장 들머리에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여성 역무원을 평소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가 살해하는 사건이 14일 저녁 벌어졌다. 15일 저녁 사건 현장 들머리에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가해자 위치추적·구속영장 요건 확대해야

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경찰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는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았다. 일단 물리적 위해나 협박이 없는 가해자의 스토킹 위험도를 제대로 측정하기도 어렵고, 안전조치 수준에 대해 ‘이만하면 됐다’는 피해자의 주관적 판단을 존중하는 제도적 한계가 뚜렷한 영향이 크다.

경찰이 스마트워치 등을 제공해 안전조치를 받던 피해자와 그 가족이 살해되는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자, 지난해 12월 서울경찰청은 위험도를 평가해 유치장에 가해자를 유치하는 ‘잠정조치’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격리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ㄱ씨는 지난해 10월 처음 고소한 뒤 한달간 112 시스템상 안전조치 대상자로 등록된 게 전부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실제 가해자 전씨의 위해 시도도 없었고, 숨진 피해자도 원하지 않으면서 안전조치가 종료됐다”고 말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설령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를 착용했더라도 피해자가 가해자와 맞닥뜨렸을 때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피해자 보호는 ‘뻥 뚫려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명백한 큰 공백이 있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이번처럼 (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상태였다면, 피해자 보호를 더 완벽하게 해야 했다. 외국처럼 지피에스(GPS)로 가해자 위치추적을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찰도 피해자 안전조치 한계를 인정하며 ‘가해자 분리’ 실효성 등을 높여야 할 시점으로 보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가해자를 피해자 집과 직장으로부터 접근금지시키고 (스마트워치 등) 전자장치로 접근금지 실효성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본다”고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스토킹 가해자의 피해자 접근금지 명령 등의 위반율은 13.2%로 집계됐다. 스토킹 가해자를 위치추적할 수 있는 전자장치 부착 대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나 국정과제에서 제외됐다. 이날 저녁 신당역을 찾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한겨레>에 “최근 가해자에게 전자장치를 붙이는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해 대단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집행유예가 선고된 가해자에게 최장 5년 범위에서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별한 전조 없이 스토킹에서 살인으로 넘어가는 스토킹 범죄의 성격을 고려해 형사소송법의 구속 요건에 ‘피해자 위해 우려’ 등을 명백히 규정해야 한다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스토킹 살인 사건과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등의 영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형사소송법상 보복범죄 우려는 고려사항으로만 규정돼 있어, 이를 명시적인 구속 사유에 포함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혁 부경대 교수(법학)는 “보복범죄 방지와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구속제도를 볼 때가 됐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구속을 (형벌권을 가진) 국가와 피의자 사이 대립 구조에서 벗어나,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하려는 국가의 이익, 피의자의 인권보호, 보복범죄로부터 피해자 보호라는 다면적 관계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한편, 이날 저녁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부경찰서를 방문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피해자와 유가족분들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청장으로서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신당역 역무원 살인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함께, 피해자 보호 등과 관련된 제도적 문제점과 개선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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