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가브리엘 놀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본인 제공.
스콧 가브리엘 놀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고, 9·11 테러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연구한 ‘재난 역사 전문가’다. 2015년부터 한국에서 지내며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한국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긴 사회적 재난과 그 경과를 관찰해온 그를 <한겨레>가 지난 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놀스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젊은이들이 대거 희생된 또 다른 비극이 벌어졌다”며 “종교 의식이나 문화 행사장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 이 같은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진 압사 사고는 역사적으로도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놀스 교수는 이태원 참사를 단순한 ‘사고’가 아닌 ‘재난’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구조와 법, 규정에 의해 예방되었어야 할 대규모 인명 피해라는 점을 볼 때 이번 사고는 재난이다”라며 “이를 단순 사고로 부르는 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의 책임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대형 압사 사고를 분석해보면 크게 세 가지 공통적인 원인이 드러난다. 공간의 구조적 위험, 불충분한 공권력, 위험 상황을 대비한 행정 당국의 사전 대비 부재가 그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이 세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놀스 교수는 설명했다. “이태원은 막다른 골목이나 좁은 골목길이 많다. 이런 공간에 대규모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매년 핼러윈 기간마다 이태원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올해는 특히 코로나 이후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면서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거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예상 인파 대비 턱없이 부족한 경찰력을 배치했고, 이 같은 사고를 예견해 미리 대비하는 데 실패했다. 이번 참사는 운이 나빠서 벌어진 게 아니라 나쁜 계획, 정확히는 나쁜 ‘무계획’ 탓에 벌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놀스 교수는 지난 2001년 미국 뉴욕의 심장에서 3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9·11 테러 사건을 가리키며 이태원 참사와 “닮은 점이 있다”고 했다. “비행기가 도심 한복판에 있는 건물을 들이받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테러 공격을 대비할 수는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건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번이라도 대피 훈련을 했다면 사망자 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의 역할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대비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주최가 없는 행사여서 행정력을 동원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설명에 대해서는 “책임을 전가하는 건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유사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태원 같이 언제나 대규모 인파가 몰릴 수 있는 유흥 지구에 대해서는 새로운 규정이 필요하다. 필요하면 일방통행 보도를 지정하거나 특정 지역에 일정 수준 이상의 사람이 몰리지 않게 통제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며 “미국의 경우 민관 협력을 통해 개별 업장들이 자체적으로 안전 인력을 두게 하기도 하고 상인연합회 등에서 인파가 몰릴 경우 보행 안내 등에 나서기도 하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진상 조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놀스 교수는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진상 조사”라며 “경찰과 서울시, 정부에 무거운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어떤 위험 대비가 이뤄질 수 있었는지, 어떤 규정이 있었고 왜 지켜지지 않았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정파적 연계가 없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된 재난 진상 조사 기구가 설치돼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게 진상 조사 보고서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위험을 미리 대비해 계획을 세워두는 건 공짜가 아니다. 참사의 원인을 낱낱이 파헤쳐야 또 다른 이태원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한 효율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놀스 교수는 “최근 수년간 일어난 일련의 재난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어떻게 결집하고 희생자들과 연대하는지 지켜봤고, 감탄했다”며 이태원 참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놀라운 공감 능력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희생자를 탓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들의 비극에 공감해주고, 유족들의 트라우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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