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서 112 신고 처리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전후로 112신고를 접수한 서울경찰청 112종합상황실을 지배한 것은 매뉴얼보다 ‘관행’이었다.
긴급 출동이 필요한 ‘코드0’부터 비슷한 내용의 중복신고까지, 모두 행동 지침이 있었으나 실전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긴급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할 책임자는 근무 수칙을 어기고 사무실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참사가 ‘인재’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매뉴얼만 지켰어도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한숨 섞인 말이 나온다.
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태원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에서 관련 매뉴얼은 수차례 지켜지지 않았다. 경찰청에서 작성한 ‘112 신고 접수·지령 매뉴얼’을 보면 지방청 112종합상황실은 종합상황실장 아래 상황팀장과 접수반, 분석대응반으로 나뉜다.
참사 당일 6시34분부터 참사가 발생한 10시15분까지 이태원 일대에서 인파 사고 위험을 알린 신고 11건 중 압사를 언급한 신고가 6건, 사고가 일어난 골목 인근에서 들어온 신고가 9건이었다. 매뉴얼의 ‘다수 신고자에 의한 중복신고’ 항목은 “대형재난·재해, 등 동시다발 신고가 예상되는 경우 접수자가 상황팀장에게 통보하고 상황팀장이 모든 근무자에게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또한 유사시 상황팀장은 112종합상황실장(일과 후에는 상황실 당직 책임자인 상황관리관)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
그러나 상황팀장은 밤 11시가 넘어서 소방청에게 연락을 받은 경찰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 사고 상황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상황팀장은 상급자인 112종합상황실장에게 해당 사실을 보고하고, 11시36분에는 당직으로 상황관리관이었던 류미진 총경에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태 파악이 늦어지며 서울경찰청에서 경찰청으로 이어지는 보고 체계도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류 총경에게 보고를 받아야 했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이미 밤 11시36분에 첫 보고를 받았다. 류 총경이 경찰청 상황실로 보고한 것은 다음날 0시2분이었다.
112상황실 근무 경험이 있던 복수의 경찰 관계자들은 “사고 전 신고 11건이 40여명이었던 상황실 근무자 여러 명에게 분산돼 위험이 종합적으로 판단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으나, 상황팀장의 뒤늦은 사고 인지와 보고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고 발생 시각인 10시15분부터 상황팀장이 사고를 인지한 11시까지 이태원 일대에서 “살려달라”는 내용의 112신고는 87건에 달했기 때문이다.
‘코드0’ 관련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 당일 저녁 8시53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압사당하고 있다”는 신고에 경찰이 즉시 출동해야 하는 코드0이 발령됐다. 매뉴얼에서는 코드0 사건은 실시간 전파 후 공조 출동 명령을 내리도록 했으나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은 용산경찰서나 인근 경찰서에 공조 지시를 하지 않았다.
여기에 당직 상황관리관인 류 총경까지 근무지침을 어겼다. 야간근무 전반(저녁 6시∼새벽 1시)에 상황실에 대기하도록 한 근무 수칙을 지키지 않고 같은 건물에 있는 본인의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경찰 내부에서는 신고 처리 및 근무지침 매뉴얼이 무용지물이 된 채 오래라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소속 경정급 경찰관은 “상황팀장한테 총경이 상황실에서 곧바로 지시하는 건 사실 책에서나 나오는 상황”이라며 “경찰들끼리는 상황관리관이 어떻게 계속 상황실에 앉아 있겠냐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도 “총경이 상황실에서 근무를 서지 않는 잘못된 관행이 수십 년째 이어져 오고 있어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원칙을 지키지 못한 데에 따른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상황관리관 당직 경험이 있는 서울경찰청 소속 총경급 경찰관은 “당직인 상황관리관이 상황실에 24시간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할 것을 고려해 상황실과 사무실 대기 시간을 나눈 것인데 이조차 지키지 않았다”며 “이번 사고에서 112 신고 처리 매뉴얼을 비롯해 여러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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