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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유엔난민기구 대표 “2차대전 후 가장 많은 난민…한국 연대 기대”

등록 2022-11-12 09:00수정 2022-11-12 10:38

4년만의 방한…이태원 참사현장 방문
“한국, 난민 인정 기준 폭 넓혀야”
난민 위기 심각…긴급 구호 역대 최다
11일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만난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 사진 유엔난민기구 제공
11일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만난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 사진 유엔난민기구 제공

지난 10일 저녁,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가 이곳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정우성과 함께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사실이 에스엔에스(SNS)로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곳에 모인 시민들과 희생자들을 애도한 그란디 대표는 “서울처럼 큰 도시에서 이런 참사가 벌어진 건 굉장히 마음 아픈 일”이라며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하며 많은 참사들을 봤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연대감을 보여주는 것이고,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지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오후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만난 그란디 대표는 “한국 정부와 시민들에게 난민 문제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꾸준히 호소했던 만큼 이번 참사에 연대의 뜻을 보내는 것 역시 유엔난민기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다. 지난 9일 사흘 일정으로 방한한 그는 10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박진 외교부 장관을 만난 데 이어 이날 낮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만나 현재의 난민 신청 및 보호 시스템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지난 10일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필라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대표와 정우성 친선대사. 필라포 그란디 트위터
지난 10일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필라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대표와 정우성 친선대사. 필라포 그란디 트위터

코로나19로 4년 만에 방한한 그란디 대표는 “한국의 난민 보호 체계가 더욱 발전했다”면서도 여전히 좁은 범위로 유지 중인 국내 난민 인정 기준을 지적했다. 그는 “만약 당신이 여성이고, 전쟁이 난 고국에서 성폭력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난민 신청자의 자녀는 출생등록이 어려운 국내법의 한계도 짚었다. 그는 “50년간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고, 모든 문을 외국에 개방했다”며 “한국이 우크라이나나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들에게 보였던 연대감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난민 인정에도 폭넓은 기준이 적용되면 좋겠다”고 했다.

유엔난민기구 전체적으로는 올해 긴급구호 상황이 예년보다 서너배가량 많은 ‘비상 상황’이었다. 그란디 대표는 “지난 12개월 동안 유엔난민기구는 37차례나 긴급구호 상황을 선포했다. 한 해 평균 8∼10번 정도 긴급구호를 했는데, 그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난민기구의 긴급구호는 갑작스러운 분쟁 등으로 난민이 된 이들에게 신속하게 원조물품과 전문인력을 파견해 대처하는 활동을 가리킨다.

그는 “현재 기준 전쟁 등으로 인한 강제 실향민은 1억300만명이고, 이중 1400만명이 우크라이나 실향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자원들이 쏠리면서 아프리카와 중동, 방글라데시 난민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더욱 어려워지는 문제 또한 유엔난민기구가 겪는 어려움 중 하나다.

그란디 대표는 기후 위기 시대에 향후 ‘기후 난민’ 역시 구조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짚었다. 극심한 가뭄을 겪은 농부들은 물을 퍼내려고 깊은 굴을 파냈지만, 정작 목축업자들이 기르는 가축이 이런 굴에 빠져 숨지는 일로 분쟁이 생겼고 결국 난민까지 발생하는 사태가 심심찮게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그가 중앙아프리카 국가 카메룬을 방문했을 때 직접 목격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는 “기후 위기가 지역사회에 분쟁을 발생시키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강제이주를 당하는 사태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필리포 그란디 대표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비영리단체를 거쳐 1988년부터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했고, 아프가니스탄 담당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로도 활동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동 지역 및 제네바 본부에서 근무하며 30년 이상 난민 및 인도주의 활동에 전념했다. 2016년 1월 당시 5년 임기로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에 취임한 그란디는 임기가 한 차례 연장되면서 오는 2025년 12월까지 대표로 활동할 예정이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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