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한 유튜브에 올려진 박강수 마포구청장과 구민들 간 면담 영상 갈무리. 자막은 자동화된 것으로 실제 발언과 일치한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부모들이) 마포를 떠나는 이유가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못 가 그렇다.” “(내가 관내) 홍익대·서강대 총장한테 동냥하러 갔다… 지역 주민들 (대학 입학) 문턱을 낮춰주는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관내 도서관 예산 30% 삭감과 사실상 ‘작은도서관’ 폐관 추진으로 구민들 원성을 산 서울 마포구 박강수 구청장이 최근 구민들에게 이와 같이 발언한 사실이 15일 확인됐다. 본인의 작은도서관 내 독서실(스터디 카페) 확대·대체안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구민들에 대한 멸시와 지방 차별 인식을 함께 드러낸 것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박 구청장은 지난 14일 상암동 소각장 설치 반대 민원 차 구청을 찾은 주민들에게 작은도서관 논란에 대한 입장도 밝히며 “(부모들이) 마포를 떠나는 이유가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못 가기 때문에 그렇다… (고교생들에게) 돈도 안 들어가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들어주자, 이게 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구립 작은도서관에 스터디 카페 기능을 추가·대체하면 자율학습 환경이 보강되어 주요 대학 진학률이 오르리란 취지다. 그는 또
“(관내 대학) 총장들한테 동냥하러 갔다. 마포구 아이들이 다 지방으로 대학교 간다고 한다. 우리 지역 주민들의 문턱을 좀 낮춰주는 제도를 좀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도 발언했다.
15일 서울 마포구의회 1층 회의실에서 마포구민들이 주도해 마련한 ‘마포구립 작은도서관 고유의 기능을 지키기 위한 주민공청회’에 120여명의 구민들이 참석했다. 임인택 기자
현재 고3·대학생 두 자녀를 “작은도서관을 다니며 키웠다”는 구민 이아무개(망원동)씨는 유튜브에 올려진 면담 영상을 보았다며 <한겨레>에 “너무 화가 난다, 이건 인권(침해) 문제다” “독서실이 없다고 공부를 못 하지는 않는다. 실제 사설 스터디 카페가 동네 건물마다 있다. 어떻게 이 동네 아이들이 좋은 대학 못 간다는 얘길 이 동네에서 할 수 있나.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계속 (정책이) 그러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마포구엔 독서실 용도의 공공시설(2곳)도 갖춰진 상태로, 다만 이용자가 줄고 있다고 구민들은 전한다.
공청회 입구 책상에 주최 쪽이 비치해둔 종이 피켓의 문구. 임인택 기자
한편 15일 마포구민이 마련한 ‘마포구립 작은도서관 고유의 기능을 지키기 위한 주민공청회’(마포구의회 회의실 )에선 책과 공동체 문화의 본거지로 작은도서관과 도서관의 가치를 강조하는 통렬하면서도 지적인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10년 전 둘째 아이 임신 때 글마루작은도서관을 보고 성산동에 전입했다는 김현주씨는 “학원, 스터디 카페 하나를 짓는 것보다 작은도서관의 역할이 어린이에게나 양육자들에게 더 크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돌봄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큰 아이가 이제 중학생이 됐다”며 “(나 또한 작은도서관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누구엄마’라고 불릴 뻔한 제가 김현주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 이들이) 저뿐만이 아닐 것이다. 작은도서관을 통해 많은 기회를 얻고 문화를 누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도서관의 공간 활용성(도)만 구청장이 언급하고 있는데, 작은도서관은 너무 협소해 (스터디 카페 기능을 추가한다면 아이들·부모와 입시생) 모두에게 계륵이 된다”며 “전형적 탁상공론이고 혈세 낭비로 거론 자체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은 구민들로부터 공청회 참석을 요청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 그는 마포구청 앞에서 열린 ‘마포구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에는 참여했다. 구의회로부터 3분 거리다.
공청회가 열리는 동안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구청사 입구에서 열린 ‘마포구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의 김장 나눔’에 참석했다. 공청회 참석 요청을 받았으나 오진 않았다. 박강수 마포구청장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이날 공청회에 아이를 데리고 온 한 구민. 임인택 기자
앞서 박 구청장은 도서관 전체 예산안에서 30%를 삭감하라고 실무책임자에게 지시하고, 지난달 말 날인까지 찍었던 작은도서관 위탁운영 재계약도 11월 들어 취소한다고 통보해 논란이 불거졌다.
<한겨레> 보도 이후 마포구는 작은도서관 예산을 올해 집행액(7억원대)보다 11% 더 증액해둔 상태다.
박 구청장은 14일 구민 면담에서
“(도서관 이용 실태를) 냉정하게 판단해 정말로 이 도서관이 없어져야 되겠구나, 이 도서관을 바꿔줘야 되겠구나, 이 도서관 (위탁운영) 업체를 바꿔야 되겠구나 이런 결단을 내리라는 거”라면서도 “구민들이 원하면 그대로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인숙 마포구 복지동행국장은 15일 <한겨레>에 “지금까지 활성화 방안을 놓고 계속 검토 중에 위탁 문제도 있었다. 14일 늘푸른소나무작은도서관은 직영해 도서관 기능 유지하며 오후 6~11시 스터디 카페를 운영하고, 나머지 8곳을 민간에 재위탁해 그중 2곳도 스터디 카페를 시범 운영하기로 결정했다”며 “작은도서관 예산은 인건비가 늘어 증액되지만, 전체 도서관 예산 편성이 어떻게 될진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