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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왜 놀러 갔냐고 묻는 폭력…“뭘 하다 죽으면 괜찮은 겁니까”

등록 2022-11-16 06:00수정 2022-11-17 00:35

그들이 말하는 이태원과 핼러윈
“우리에겐 자유, 해방, 나눔의 축제”
놀러 간 사람도, 축제도 죄가 없다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가을밤 불꽃축제, 봄날 벚꽃축제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각오하고 가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인파가 몰리는 장소일수록 국가가 보장하는 치안 시스템이 작동할 것이라 기대한다. 10월29일 밤 이태원에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여당이 국가 시스템 부재에 대한 책임 인정에 소극적으로 나서자, 책임의 공백을 ‘그날 거기에 간 사람들도 잘못’이라는 인식이 채우기 시작했다. 한국갤럽(8~10일 조사)이 이번 참사의 일차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보느냐고 묻자 대통령·정부(20%), 경찰 및 경찰 지휘부(17%)에 이어 ‘그곳에 간 사람들’(14%)이라는 답변이 나올 정도다.

<한겨레>는 핼러윈을 즐기고 이태원을 즐겨 찾는 시민 14명을 지난 10~13일 인터뷰했다. 그들은 “어디에서 뭘 하다 죽어야 책임을 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 10월28일 이태원에서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우아무개(27)씨. 우씨는 “평상시 생활에 지치고 힘들 때, 놀 수 있는 축제 같은 게 있으면 그날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며 “코스튬 복장도 한 달 전부터 준비하고 매일 입어보기도 하며 평상시를 견딜 힘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씨 제공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 10월28일 이태원에서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우아무개(27)씨. 우씨는 “평상시 생활에 지치고 힘들 때, 놀 수 있는 축제 같은 게 있으면 그날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며 “코스튬 복장도 한 달 전부터 준비하고 매일 입어보기도 하며 평상시를 견딜 힘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씨 제공

핼러윈을 금지시키라는 억지

우아무개(27)씨는 2018년부터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겼다. 음대를 다닐 때 공연 드레스를 사러 자주 들렀던 이태원이지만, 학생 때는 시험과 취업 준비 때문에 제대로 놀지 못했다고 한다. “어릴 적만 해도 이웃들과 같이 놀았던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삭막해서 이제 그런 날이 없어요. 핼러윈뿐이죠. 코스튬을 주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일상을 견뎠어요.”

올해도 이태원을 찾은 우씨는 “누가 압사를 상상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스포츠경기에서도, 공연에서도 압사 사고가 발생해요. 그럴 때마다 스포츠경기를 없애고 공연을 하지 말자는 말은 안 하잖아요. ‘왜 거기에 놀러 갔느냐’ ‘핼러윈을 금지시켜라’라는 말은 너무 억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생 이아무개(21)씨는 이태원 참사 현장 바로 옆 골목에 있었다. 대학에서 메이크업을 전공하는 이씨는 2019년부터 친구 3명과 테이블을 놓고 핼러윈 분장으로 용돈을 벌었다. “하루에 100명 가까이 분장을 받거든요. 코로나가 풀려서 다들 신나고 설레는 표정으로 와서 분장을 받았어요. 저는 코로나 때문에 축제 같은 걸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세대거든요. 모든 게 비대면이라 대학에서도 엠티랑 오리엔테이션도 못 갔어요.”

“아직 너무 충격이 커요. 사람들이 너무 ‘놀다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본인들도 설마 그렇게 될 줄 알았겠어요. 그저 즐거운 마음뿐이었을 텐데.” 이씨는 “이태원 핼러윈만큼 장벽이 낮은 축제가 없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열린 여의도 불꽃축제도 사람이 많았잖아요. 핼러윈과 다를 게 없었어요. 다들 즐기러 간 거죠. 이태원에 갔던 사람들이 설마 알았겠어요. 그렇게 될 거라고….” 이씨는 울먹였다.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2022.11.9 연합뉴스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2022.11.9 연합뉴스

참사 생존자 김초롱(32)씨는 사고 원인에 대해 “위에서 판단하는 사람들이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가졌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다는 보고를 받고도 용산경찰서장이 그렇게 느릿느릿 걸어서 갔겠느냐”는 것이다.

핼러윈·이태원이라는 시공간

장윤진(32)씨는 대학생 때인 2012년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을 처음 방문했다.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처럼 눈 아래 속눈썹을 길게 그려 넣었다. 그날의 이태원에는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분장한 온갖 인파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이날만큼은 편견 없이 서로 이해받을 수 있다는 유대감을 느꼈어요. 이태원을 무대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만나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주체적인 축제는 처음이었죠.”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자마자 “그러게 사람 많은 데를 왜 가서”라는 말을 무의식중에 내뱉었던 그는 10년 전을 자신을 떠올리고 이내 후회했다고 했다.

내성적 성격인 박신영(30)씨에게 이태원 핼러윈은 예외였다고 한다. 길거리 낯선 이들이 친밀하게 느껴졌고, 어떤 모습을 하든 포용하는 다양성을 느꼈다고 했다. “코스튬을 한 아이들이 호박 바구니를 들고 사탕을 달라고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가방에 있던 젤리를 막 꺼내서 담아줬죠. 먼저 나서지 않더라도 모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던 날이었어요.”

지난 2015년 영화 캐릭터 ‘조커’ 코스튬을 하고 핼러윈데이를 즐기고 있는 윤형주(32)씨. 10년 째 핼러윈데이를 즐겨왔다는 윤씨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어울릴 수 있는 행사는 핼러윈 데이말고는 없을 것 같다”며 “나를 표현하려는 열정을 드러내는 유일한 날이라서 매년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윤씨 제공
지난 2015년 영화 캐릭터 ‘조커’ 코스튬을 하고 핼러윈데이를 즐기고 있는 윤형주(32)씨. 10년 째 핼러윈데이를 즐겨왔다는 윤씨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어울릴 수 있는 행사는 핼러윈 데이말고는 없을 것 같다”며 “나를 표현하려는 열정을 드러내는 유일한 날이라서 매년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윤씨 제공

단지 즐겁고 싶었을 뿐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겼던 이들은 “경쟁 사회 속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날” “축제 속 군중이 아닌 주체가 돼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날” “외국인들과 자연스레 만나며 세계화를 느낄 수 있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즐겁게 놀고 싶었을 평범한 희생자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참사 당일 남편·아이와 함께 ‘알라딘’ 코스튬을 하고 이태원을 찾았던 이서현(35)씨는 “한국 사회는 답이 정해져 있는 사회 아닌가.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눈치를 주기 때문에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핼러윈이 소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참사로 ‘즐거워지고 싶다’는 욕망을 사람들이 못마땅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전날인 지난 10월28일 이태원 인근에서 15개월 아이, 남편과 함께 영화 ‘알라딘’ 올해 15개월 아이, 남편과 함께 영화 ‘알라딘’ 분장을 한 이서현(35)씨. 이씨는 “우리 사회는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눈치를 주기 때문에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핼러윈이 소중했다”고 했다. 이씨 제공
‘이태원 참사’ 전날인 지난 10월28일 이태원 인근에서 15개월 아이, 남편과 함께 영화 ‘알라딘’ 올해 15개월 아이, 남편과 함께 영화 ‘알라딘’ 분장을 한 이서현(35)씨. 이씨는 “우리 사회는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눈치를 주기 때문에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핼러윈이 소중했다”고 했다. 이씨 제공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겼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꼈다는 이도 있었다. 김예슬(28)씨는 “이태원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할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라, 내가 이태원에 놀러 가는 것을 보고 혹시 그날 이태원에 간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참사 후 열흘 넘게 고민하다 노는 게 뭐가 잘못인가 싶더라”고 했다.

핼러윈 분장을 좋아하는 11살 자녀를 둔 김민영(40)씨는 “뭘 하다 죽으면 괜찮은 것이냐”고 반문했다. “아이가 앞으로 살면서 힘들 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핼러윈을 함께 챙겼다. 이제 아이에게 노는 건 위험하다고 가르쳐야 하느냐”고 답답해 했다.

김씨는 “놀이공원에 갈 때, 거리 응원을 할 때 압사 당할 위험을 각오하고 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질서 유지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나가는 건데, 아무 말이나 쉽게 하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우아무개(25)씨는 “‘놀다가 죽었다’는 말에 반기를 들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는 마음을 추스르고 꼭 이태원에 가서 다시 놀겠어요.”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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