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목도리 맨 유족들 오열
희생자 79명 이름 부르며 추모 기도
희생자 79명 이름 부르며 추모 기도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나눔의집협의회 주최로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와 연대의 성탄절 연합 성찬례가 열린 가운데 한 유가족이 눈물 흘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세은아 안녕. 벌써 크리스마스다. 우리 작년에 같이 벽에 크리스마스 장식 꾸며놓고 사진 찍었는데… 기억나? 네가 눈 참 좋아했잖아. 올해는 이렇게 눈 많이 쌓인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우리 지금쯤이면 원래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눈사람 만들고 있어야 하잖아.
독일, 체코,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프랑스. 그 아름다운 유럽의 풍경들을 너한테도 언니가 꼭 보여주고 싶었어. 비행기를 무서워했던 너한테 이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어. 그런데 이렇게 순식간에 무너져 버릴 줄 몰랐어. 언니는 아직도 너한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은데…. 삶이 참 덧없고 부질없다. 그치? 네가 올해 들어서 언니한테 계속 ‘머리카락 좀 자르라’고 잔소리했잖아. 그래서 며칠 전에 머리카락 40cm 소아암 환자들한테 기부하기로 했어. 네가 병원에서 너무 아파할 때. 그 기억이 아직도 너무나 생경해서. 오늘도 힘겹게 병과 싸워내는 아이들이 모두 다 너처럼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네 이름 진세은으로 기부하려고 해. 너 관심받는 거 엄청 부끄러워했지만 이번엔 좋은 일이니까 웃으면서 넘어가자. 몇 달이 지난 요즘은 이제는 많이 아프진 않아? 추운데 옷은 따뜻하게 입고 다녀? 너 좋아하던 미니스커트는 가끔씩만 입어. 그러다 감기 걸리니까. 늘 웃으면서, 행복한 일만 기억하면서, 그렇게 살자. 언니랑 엄마랑 아빠도 조금만 힘들고 조금만 아파할게. 어제도 언니 꿈에 나와줘서 진짜 고마웠어. 계속 기다릴 거니까 심심하면 또 나와서 언니한테 재잘재잘 수다 떨어줘. 사랑해 세은아 아프지 마.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나눔의집협의회 주최로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와 연대의 성탄절 연합 성찬례가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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