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스스로 어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법정. 주황색 경량패딩을 입은 69살 남성 ㄱ씨가 변호사도 없이 피고인석에 섰다. ㄱ씨는 서울 관악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면서 새벽 시간에 청소년을 노래방에 출입시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은 원래 벌금 70만원 약식명령으로 끝날 사건이었지만, ㄱ씨가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지난해 5월22일 새벽 1시, ㄱ씨가 운영하는 노래방에 손님 한 명이 들어왔다. 180㎝가량 키에 덩치가 컸던 이 손님은 마스크와 모자를 쓴 채로 지하 1층 노래방으로 비틀거리며 내려왔다. 술에 취한 성인으로만 생각했던 ㄱ씨는 노래방 비용 2만원을 받고 방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그 손님은 14살 청소년이었다.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ㄱ씨를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ㄱ씨에게 ‘음악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 법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청소년의 노래방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재판에 넘겨진 ㄱ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다만 ㄱ씨는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모르고 입장시켰죠. 키 큰 남자가 마스크에 모자까지 쓰고 비틀비틀 들어오는데, 당연히 술 취한 성인인 줄 알았습니다. 요즘은 마스크를 쓰니까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판사가 “잘 모르겠으면 확인을 했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되묻자, ㄱ씨는 “확인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 잘못을 인정합니다”라고 답했다.
재판이 끝날 무렵, 판사가 노래방을 계속 운영하고 있는지 묻자, ㄱ씨는 “폐업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 이후로 계속 힘들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그냥 접으려고 합니다. 요즘 먹고 살기 너무 어렵습니다.”
한달 뒤 판사는 ㄱ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해당 청소년이 키가 크고 어려 보이지 않은 점, 이미 과징금 50만원을 낸 점을 참작했다. 검사와 ㄱ씨 모두 항소하지 않았다.
ㄱ씨의 벌금형이 확정된 뒤, 그의 노래방에 전화를 걸어봤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음성안내만 나왔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