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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화마 덮친 구룡마을의 설…역대급 한파에도 잿더미만 빤히

등록 2023-01-24 16:29수정 2023-01-25 08:57

지자체 인근 호텔에 임시숙소 마련했지만
연휴내내 세간살이 건질 것 찾아 집터 오가
24일 정오께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주민 유근우(68)씨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집터를 바라보고 있다. 박지영 기자
24일 정오께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주민 유근우(68)씨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집터를 바라보고 있다. 박지영 기자

“그래도 명절이라고 이웃들이 해준 떡국이랑 잡채 먹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앞으로 어디 가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해요.”

24일 정오께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만난 주민 조아무개(70)씨는 새까맣게 그을린 냉장고만 덩그러니 남은 집터를 바라보며 울먹였다. 지난 20일 새벽 6시께 거센 불길이 조씨 집까지 번져오자 조씨는 함께 사는 아들과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집을 뛰쳐나와야 했다. 설 연휴 내내 조씨는 구청이 마련한 인근 호텔에서 눈만 붙이고 새까맣게 타 버린 집터를 수시로 오고 갔다. “지금 입고 있는 바지 하나, 운동화 한 켤레 가지고 나온 게 전부다. 명절이라 친척들이 걱정돼 찾아온다고 하길래 오지도 말라고 했다. 남들이 보기엔 허름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 가족들 나름대로 편하게 30년 가까이 산 곳인데….”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이날 오전 구룡마을에서 만난 조씨를 포함한 이재민 20여명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삶의 터전 앞에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영하 14도의 기록적인 한파에도 이재민들은 연휴 기간 내내 ‘혹시 건질 물건이 있을까’ 화마가 휩쓴 마을을 차마 떠나지 못했다. 이날 아침부터 마을 주민들은 마을 위 한쪽 공터에 ‘구룡마을 화재민 비상대책본부’ 현수막을 걸고 하얀 천막을 쳤다. 주민들은 화재 현장에 타다 남은 연탄으로 난로에 불을 피워 겨우 찬바람에 맞섰다.

23년 동안 구룡마을에 산 주민 유근우(68)씨는 “설이라고 자식들이 찾아와서 얼굴은 봤는데, 차마 불타버린 집 보여줄 수 없어 그냥 가라고 했다. 근무 교대 시간 짬을 내 아내와 함께 집을 다시 찾았는데 건질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유씨와 함께 집터를 둘러보던 아내 ㄱ씨는 “눈 감으면 깨진 그릇들이 생각나 다시 와 봤다. 이 깨진 항아리들, 안에 담긴 소금은 다 어떻게 해야 하냐”며 막막해 했다. 화재 당일 속옷 하나 가지고 나오지 못한 유씨는 이날 구청이 지원해준 패딩을 입었다. “은퇴하고 그래도 이곳에서 아내와 함께 성실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이런 재앙이 왔는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검정 패딩에 주황색 슬리퍼 차림으로 임시 숙소에 머물고 있는 신성모(71)씨도 “장애 1급 판정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데, 불이 나 이 옷차림 그대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추위에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한편, 경찰과 소방당국은 한 주택에서 전기적 요인에 의해 불이 시작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합동 감식 등을 이어가고 있다.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로는 전선 등의 합선·누전 등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설 연휴 전날인 지난 20일 오전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불로 주택 60채, 2700㎡가 소실됐다.
24일 정오께 화마로 새까맣게 타 버린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 박지영 기자
24일 정오께 화마로 새까맣게 타 버린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 박지영 기자

24일 정오께 화마로 새까맣게 타 버린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 박지영 기자
24일 정오께 화마로 새까맣게 타 버린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현장. 박지영 기자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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