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택도시공사의 한 매입임대주택에 사는 대학교 4학년 류상윤씨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집에서 책을 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학교 4학년생 류상윤(26)씨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한 매입 임대주택에서 월세 28만원을 내며 산다. 그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여서 주거급여를 지원받지만, 이 지원은 한시적이다. 곧 직장을 구하게 되면 소득이 늘어 수급자 자격을 상실하고, 임대주택에서도 나가야 할 가능성이 크다. 류씨는 주말에 배달 노동을 한다. 일당 10만원 정도를 벌어야 생계급여와 함께 취업 준비와 생활비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류씨는 최근 청년들에게 ‘낮은 가격’에 집을 분양해주겠다는 뉴스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종잣돈(시드 머니)은 꿈도 꾸지 못하는 류씨에게 7천만원은 언감생심이다. “7천만원을 당장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모아둔 사람이거나 아니면 부모 찬스를 써야겠죠. 내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윤석열 정부는 “끊어진 주거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며 오는 2027년까지 청년층에게 공공분양주택 34만호를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게 정부가 시세의 70% 가격에 청년층·서민에게 집을 판매하는 ‘뉴홈’ 정책이다. 집값의 80%까지는 최대 40년의 장기 대출도 가능하다. 지난 3월 추정 분양가 3억5천만원인 서울 고덕강일지구의 ‘뉴홈’ 500채 청약에 2만여명이 접수했다. 당첨만 된다면 분양가의 20%만 내고 집을 보유할 수 있어 ‘로또 주택’으로 불린다. 하지만 류씨 같은 저소득 청년들은 분양가의 20%(서울 7천만원, 수도권 기준 6천만원)를 내고 ‘로또’를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부분의 청년은 나랑 집은 또 한 걸음 멀어지겠다고 느끼게 되겠죠.”
어떤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좇는 사이, 저소득 청년들은 최저주거기준을 채운 집 혹은 전세사기를 피할 수 있는 집을 갈급하며 산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반지하 전셋집에 사는 대학생 변현준(21)씨도 후자에 속한다. 변씨가 사는 반지하 집은 그나마 언덕 위에 있어 지난해 여름 폭우 때 침수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변씨는 청년들이 당연히 이런 반지하에 살아야 하는 건가 싶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내 집을 소유할 거라는 희망은 버렸어요. 그런 측면에서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한 거죠.”
2030 청년 59명이 참여한 <한겨레> 설문조사에서도 ‘분양’보단 ‘임대’ 수요가 더 많았다.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주거) 정책 2가지를 선택해달라’는 말에 ‘임대 지원’ 정책이 45.7%(118표 중 54표)로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구체적으로 ‘전세자금 대출 지원’이 26.2%(31표),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19.4%(23표)였다. 설문 참여자들은 “현실적으로 사회 초년생들이 전월세를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이찬·33),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송수빈·25), “전세 지원만 해준다면 경제적인 부담이 확 줄어들 거 같아서”(김진만·23) 등의 의견을 냈다. 반면 ‘공공분양주택 공급’과 ‘주택 구입자금 대출 지원’, ‘내 집 마련 지원’을 원하는 의견은 25.4%(30표)에 그쳤다. 임경민(31)씨는 “공공분양이라도 집을 구매하려는 이유에는 시세 차익을 얻겠다는 목적이 있을 텐데, (내 집 마련이라는) 원래 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의 요구와 달리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다. 2021년 국토연구원의 분석을 보면, 2019년 기준 청년 1인 가구 10명 가운데 3명(31.4%)은 주거비로 월 소득의 30% 이상을 지출하는 주거비 과부담 가구였다. 반면 청년 1인 가구 215만명 가운데 공공임대 입주 비율은 4.6%에 그쳤다. 특히 최근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면서 정부가 집을 매입해 직접 임대하는 매입임대주택에 살고자 하는 청년 수요가 더욱 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해 1차로 서울 지역 매입임대주택 432가구의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자 4만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전세금을 지원하는 전세임대주택에 사는 기초수급자 구현수(가명·36)씨도 청년매입임대주택 입주 신청자다. 구씨는 전세임대 제도로는 ‘살 만한 집’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상적으로 임대해 주기 힘든 집만 취약층한테 빌려 주는 것” 같아서다. 구씨가 살고 있는 서울 역촌동 다가구주택은 문이 고장 나 있고, 난방이 잘 안돼 방에 캠핑용 난로를 설치해 두고 산다. 구씨는 “청년매입임대주택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공공임대주택 줄이기’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와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 결과, 정부는 지난해에 견주어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6천억원 줄였다. 특히 청년 공공매입 임대주택 예산은 1940억원이나 줄었다. 지수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은 “청년들이 돈 떼일 염려가 없는 공공임대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며 “실제로 버팀목 전세자금 등 정부가 대출을 지원해도 전세사기를 겪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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