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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연봉 2800, 적금 두 달도 버겁더라…목돈은 중산층 청년 몫

등록 2023-05-09 05:00수정 2023-05-09 18:24

[윤석열 정부 1년] ③ 불평등 청년예산
“희망적금 많이 넣을 수 있는 청년에만 유리”
중소기업 20대 “청년 정책도 부익부 빈익빈”

50인 이하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지윤(22)씨는 목돈을 마련할 여유가 없다. 2800만원의 연봉으로는 매달 월세 37만원과 대출금 1300만원에 대한 원리금 37만~38만원을 내면 생활이 빠듯하다. 지난해 2년 납입으로 연 9%대 금리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금융상품 ‘청년희망적금’이 출시된 뒤 매달 5만~10만원씩 부으며 가입해봤지만, 그조차 버거워 두달 만에 해지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이 정책을 확대 개편한 ‘청년도약계좌’를 도입할 예정인데, 만기가 5년이어서 이 역시 언감생심이다. “많이 넣을 수 있는 중산층 청년에게 더 유리한 제도들이라 제가 푼돈을 모아봐야 소용이 있겠나 싶더라고요.”

이씨가 유일하게 기대는 제도는 올해 8월 만기가 되는 ‘청년내일채움공제’다. 중소기업 청년이 2년간 300만원을 적립하면, 기업(300만원)과 정부(600만원)가 공동 적립해 최대 1200만원을 받는 제도다. 하지만 이 사업도 윤석열 정부가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돈이 있어야 유리한 정책은 이용할 수 없고, 그나마 제 수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책은 축소됐네요. 청년정책도 빈익빈 부익부인 것 같아요.”

<한겨레>와 나라살림연구소가 함께 한 윤석열 정부의 330개 청년정책 사업 전수조사에서 자산형성 분야를 들여다보면, 중소기업 청년 지원 예산은 줄어든 대신 중산층 청년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적금형 금융정책 사업 예산은 늘어나는 흐름이 확연하다.

정부의 이런 기조는 예산안이 나온 직후부터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대통령의 공약 사항인 청년도약계좌를 추진하기 위해 기존에 신청자도 많고 성과가 높았던 사업 예산을 크게 삭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내일채움공제 플러스 사업의 규모가 크게 줄어든 점을 두고 “장기 재직을 유도한다는 사업의 본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연소득 3천만원 경계로 나뉘는 청년들

<한겨레>가 지난달 21일부터 일주일 동안 2030 청년 노동자 59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연소득에 따라 청년희망적금 납입액 격차가 확연했다.

연봉 3천만원 이상을 받으며 청년희망적금을 이용하는 11명 가운데 10명이 매달 40만~50만원을 붓고 있었던 반면, 매달 30만원 이하를 납입하고 있다고 답한 9명 가운데 8명이 연봉 3천만원 이하 집단에 속했다. 임금이 낮을수록 중도 해지 비율이 높았고, 아예 가입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년희망적금을 이용하다 중도에 해지했다고 밝힌 7명 가운데 5명이 연봉 3천만원 이하 집단이었고, “여윳돈이 없어서” 청년희망적금의 후신 격인 청년도약계좌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7명 가운데 6명도 역시 연봉 3천만원 이하 집단이었다.

설문조사에 응한 중소기업 노동자 장아무개(31)씨는 청년희망적금을 든 직후 계획에 없던 전셋집을 얻으면서 마이너스통장을 쓰게 됐다. 마이너스통장으로 청년희망적금을 겨우 유지했지만, 금리 인상으로 7%대까지 오른 마이너스통장 이자율이 청년희망적금 금리(6%)를 넘어서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 “2년 만기 청년희망적금도 삶의 변동을 예측하지 못하는데, 5년 만기 청년도약계좌를 어떻게 들 수 있을까요.”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에 소득이 꾸준하지 않아 정기 납입이 힘든 청년도 있다. 프리랜서 정보영(31)씨는 청년희망적금이 출시됐을 때 ‘큰돈을 넣어야 이익이 크다’는 생각에 매달 50만원씩 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아 어떨 때는 통장 잔고가 0원이 되면서 납입을 건너뛰어야 했다.

정씨는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적금을 유지하려고 한다. 정씨는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소득 청년들에게 끝까지 납입할 수 있게 하는 고민은 부족했던 것 같다”며 “당장 돈을 낼 수 없는 청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주는 등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적금에 기반한 청년정책이 자산 형성에 실질적 도움이 되긴 힘들다고 지적한다. 박수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은 “이런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자산 규모로 청년들의 격차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청년희망적금도 해지율이 굉장히 높은데, 중도 탈락을 막을 정책적 고민 없이 제도를 확대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일채움공제는 “빈틈 있어도 축소 아쉬워”

반면 예산이 축소된 내일채움공제에 대해서는 <한겨레>와 심층 인터뷰한 청년 10명 중 다수가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해 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회사가 거부했다고 밝힌 최예린(22)씨는 “자산형성 측면에서는 사실 청년도약계좌보다 내일채움공제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며 “납입금 부담이 적어 소득이 적어도 큰돈을 모을 수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정책이 축소돼 아쉽다”고 말했다.

내일채움공제는 2018년 시행 이후 제도를 악용하는 회사의 ‘갑질’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중도 해지되어 납입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우려한 청년들이 회사의 부당한 조처에 항의하지 못하는 문제가 드러났다. 과거 내일채움공제를 신청했다가 회사 갑질을 참지 못하고 퇴사한 중소기업 노동자 장씨는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 사람을 잡아둘 수 있다 보니 갑질을 해도 주변 친구들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내일채움공제에 호응도가 높은 이유는 “소득이 적으면 자산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지윤씨는 “내일채움공제를 염두에 두고 취업을 계획하던 후배들이 많았는데, 정책이 안정적이지 않고 계속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설계 때부터 취약층 청년까지 아우를 수 있는 자산형성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영섭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 소장은 “새 정부 예산을 보면, 복지로 풀어야 할 정책을 금융으로 풀고 있다”며 “미래를 지속적으로 계획할 수 없는 청년들에게 저축을 무조건 권유할 게 아니라 ‘왜 지속적으로 저축하지 못할까’라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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