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건설노조 탄압 중단 촉구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이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의 1박2일 서울 도심 상경 집회를 계기로 야간집회를 제한하는 내용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헌재가 과도한 야간집회 제한을 ‘위헌’이라고 이미 판단한 만큼, 후속 입법이 헌재 결정 취지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다.
21일 오후 2시 국민의힘, 정부, 대통령실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비공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불법집회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건설노조의 1박2일 ‘노숙 농성’ 이후 야간집회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권에서 나오는 시점에 열린 회의다.
당정은 건설노조가 경찰이 금지통고를 한 지난 16일 오후 5시 이후에도 ‘10·29 이태원 참사 200일 추모 촛불문화제’ 등을 빙자해 ‘꼼수 집회’를 이어갔고, 이후 도심 일대에서 노숙해 시민 불편을 초래했다며 야간집회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행 집시법상 예술·종교 및 관혼상제 관련 집회 등은 제한·금지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이용해 주최 쪽이 집시법을 우회한다며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야간집회 금지 규정인 집시법 10조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2009년 9월 해가 뜨기 전이나 진 후 옥외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침해의 최소성’에 위배된다는 등의 이유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이듬해 6월까지 보완 입법을 요구했다. 헌재는 2014년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자정까지의 시위를 처벌하면 위헌’이라고 재차 결정했다. 자정까지는 야간집회를 허용하라는 취지다. 국회가 보완 입법 요구에 응하지 않아 현재 집시법은 자정까지의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허용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집회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경찰은 교통 방해 등을 이유로 야간집회를 제한하고 있다. 이번 집회도 애초 건설노조가 16일 0시부터 17일 밤 11시59분까지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에서 1박2일 집회를 하겠다며 집회 신고를 냈다. 경찰은 “주요 도로 등에서 차량 소통에 막대한 장애를 발생시킬 수 있다”, “노숙을 할 경우 음주·소란 행위 및 인근 주민·통행인과 집단적인 마찰 발생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하다”며 16·17일 모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집회를 하라며 부분 금지 통고했다.
시민사회는 야간집회 금지가 어떤 식으로든 명문화되면 헌재 위헌 판단 취지를 거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야간집회 금지 위헌 결정은 2008년 촛불집회 과정에서 경찰이 이 조항을 악용해 일방적으로 집회 참가자들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나온 성취였다”며 “이를 다시 되돌린다면 명백하게 집회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박한희 변호사(희망을 만드는 법)는 “소음·술판·노숙 등이 경범죄에 해당한다면 해당 조항으로 과태료 등을 부과하면 될 일”이라며 “야간에 시간대를 정해 무조건 집회를 못 하게 하는 것은 헌법상 허가제 위반의 소지가 있는 만큼 설령 법으로 야간 집회·시위를 제한하더라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