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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미국=우리 편’ 한동훈 해석과 딴판…엘리엇 판정문엔

등록 2023-07-19 14:34수정 2023-07-19 23:54

한국에 불리한 내용 제시했지만 유리한 것만 골라 브리핑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도 국가 조치로 본다는 게 미국 결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판정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판정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18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판정에 대한 취소소송 방침을 밝히며 “미국도 한국 정부 논지에 부합하는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중재판정문을 살펴보니 이는 미국 논리와 정반대의 ‘제 논에 물 대기’식 해석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미국은 ‘비분쟁당사국 의견서’에서 국제투자분쟁(의 대상)이라는 건 정부의 행위여야 하고, 비정부 기관이 위임받은 권한 범위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적시했다”며 “엘리엇의 본국인 미국이 저희가 원용할만한 해석을 해주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박근혜 정부의 삼성물산 합병 개입은 ‘공직자의 일탈 행위’이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지분권 행사’이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국제투자분쟁 제기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19일 <한겨레>가 공개된 중재판정문(297쪽)을 살펴보니, 미국 쪽 의견은 한 장관 설명과 정반대 맥락으로 나타났다. 판정문 116쪽 ‘미국 서면’ 부분을 보면,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제11.1조를 인용해 비정부기구 행위가 정부의 권한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경우 ‘국가의 조치’가 아니라는 일반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본심은 한 장관의 브리핑에서 소개되지 않은 다음 문단에 실렸다. “미국에 따르면, 국가의 위임 권한을 가진 비정부기구가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은 ‘수용, 허가, 상업적 거래의 승인이나, 할당제, 수수료 또는 기타 부과금을 부과할 권한’을 포함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같은 비정부기구의 ‘상업적 거래의 승인’도 국가의 조치로 본다는 것이 미국 서면의 결론이다.

심지어 미국은 “정부권한의 행사를 승인하는 입법적 부여”는 물론 “정부 명령, 지시, 또는 그 밖의 행위”도 ‘위임’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보건복지부의 지침과 지시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한 이상, 이는 정부의 권한 위임 범위에 속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한국에 불리한 의견을 제시했는데, 법무부는 한국 정부에 유리한 문장만을 선택적으로 소개한 셈이다.

실제로 미국의 의견서는 엘리엇 쪽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 판정문 146쪽에서 엘리엇은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했을 때 한국이 주권적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며 “미국이 서면에서 국영기업과 같은 비정부기구가 ‘상업적 거래의 승인’을 포함한 특정 상업활동과 관련해 규제, 행정 또는 기타 정부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재판정부는 이 부분에서 미국과 엘리엇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판정부는 “통상적 상황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상업적 행위라는 점에 동의한다”면서도 “이 상황은 통상적인 것과 거리가 있다. 한국 법원이 판단했듯,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의 지침과 지시에 따라 행동했으며 실질적으로 복지부의 기관으로 행위했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승산 없는 취소소송에 나서면서 무리한 주장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통상 전문인 송기호 변호사는 “법무부가 미국의 의견을 왜곡해서 인용하면서 마치 미국조차 한국의 입장에 동의한 것처럼 국민을 오도한 것”이라며 “바로 드러날 하루짜리 거짓을 국민에게 버젓이 고하는 것은 대단히 비도덕적이고 비외교적 행위”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엘리엇보다 8배나 법률비용을 더 많이 물게 된 배경도 판정문에 드러났다. 중재판정부는 “엘리엇이 4가지 쟁점 가운데 3가지(관할·본안·인과관계)에서 승소했고, 한국은 네번째 쟁점(손해산정)에서 크게 승소해 엘리엇이 청구 금액의 약 13∼18%를 판정받았다”며 엘리엇의 법률비용은 78%, 한국의 법률비용은 22% 인정했다.

엘리엇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의 형사재판을 수년간 참석하느라 대리인 수수료가 3880만 달러(한화 약 491억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으나 중재판정부는 “합리적이지 않다”며 이중 880만 달러(약 111억원)만 인정했다. 전체 법률비용 가운데 236만582달러(약 30억원)는 중재판정부 중재인의 보수, 여비, 통역 등 중재비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용은 한국 정부와 엘리엇이 균등하게 부담하기로 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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