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72억여원의 재산을 신고한 이균용 새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이틀 내내 재산 관련 의혹이 주를 이뤘다. 비상장주식 미신고와 증여세 탈루 등에 대한 지적에 이 후보자는 이틀째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원장은커녕 고위 공직자로도 자격 미달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0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아내가 딸의 국내 펀드 계좌에 돈을 입금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장녀의 현금 자산이 소득에 비해 크게 늘었는데, 후보자 아내가 딸의 펀드 계좌로 입금해준 돈 덕분에 현금 자산이 증가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 후보자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 후보자 딸은 2014년 어머니에게서 현금 5천만원을 증여받았는데, 성인 자녀에게는 10년간 5천만원까지만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펀드 계좌에 입금해준 돈은 증여세 부과 대상일 수 있다.
이 후보자의 아내가 2018~2023년 미국 유학 중이던 장녀의 국외 계좌로 매년 9천달러~1만달러씩 총 5만8천달러(6800만원)를 송금하고도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는 전날 지적과 관련해선 “도와주는 정도의 생활비라 증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증여세 탈루 사실을 시인했다.
이 후보자 아내가 땅을 ‘증여’받으며 매매로 신고해 세금을 줄인 의혹과 관련해선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나왔다. 이 후보자 장인은 땅 매입 대금을 모두 치른 뒤 자녀들을 땅 주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세무서가 ‘현금 증여’로 보고 증여세를 부과했으나 조세심판원은 이를 뒤집었다.
이날 참고인으로 나온 강남대 조세범죄연구소 소속 황인규 교수는 비슷한 시기, 비슷한 형태의 사건에서는 세무당국이 모두 ‘증여’로 봤다며, “(당시 장인은) 매입 대금을 전액 납부하고도 등기를 하지 않았다.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이 될 수 있고, 증여로 취득했는데도 매매로 등기한 (이 후보자의 아내 등도)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을 보면, 조세 부과를 면하려고 이 법을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 후보자가 ‘비상장주식 재산신고 누락’과 관련해 거듭 사과했지만, 이 점만으로도 대법원장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그렇게 큰 재산을 신고 누락했다는 사실을 법관으로서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성명을 내어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을 촉구했다. 경실련은 “대통령 지명 후 고위 공직자로서 기본 자질이 의심되는 의혹들이 쏟아졌지만,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명쾌한 해명을 못 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이 후보자는 “대법원장이 된다면 ‘성평등’ 구현을 기본으로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대법원) 인적 구성을 만들겠다.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 구성도 전향적으로 성평등을 최대한 노력해보겠다”고 밝혔다. “인준에 도움이 되라고 하는 립서비스 아니냐”(심상정 정의당 의원)는 지적에 “우리나라가 그 부분(성평등)에서 뒤떨어진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성혼 부부’와 관련해서도 “우리 헌법 정신이 ‘양성 간 혼인'을 기본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동성 간의 유사한 관계’를 금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입법부에서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쪽으로 입법을 함으로써 (동성결혼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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