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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피해자도 가해자”…이태원 참사 1년, 생존자 옥죄는 2차 가해

등록 2023-10-26 05:00수정 2023-10-26 15:03

[이태원 참사 1년]
지난해 11월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의 메모지가 붙어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해 11월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의 메모지가 붙어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제가 그때 사람을 죽였나요?”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효진(가명)씨는 되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효진씨는 지난해 10월29일 지인들과 찾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던 ‘티(T)’자 골목에 홀로 휩쓸렸다 간신히 빠져나왔다. 며칠간은 온몸에 파스를 붙여야 했을 정도로 압박으로 인한 통증이 심했다. 하지만 몸에 난 상처보다 깊었던 것은 살아난 뒤 들려온 ‘말’이 남긴 상처였다.

‘언니, 난 피해자도 가해자라고 생각해.’ 피해자 역시 사고 현장에서 누군가를 밀쳤을 테니 가해자라는, 친했던 이가 참사 직후 건넨 이 말은 여전히 효진씨 가슴에 문신처럼 남아 있다. “저는 아직 괜찮지 않아요. 진짜, 괜찮지 않아요.” 지난 22일 만난 효진씨는 이 말을 반복했다.

참사가 벌어지고 1년, 지금까지 책임을 진 정부 관계자는 없다.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윗선 잘못이지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탄핵소추를 당한 안전최고책임자에게 헌법재판소는 ‘잘못은 했지만, 파면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면죄부를 줬다. ‘159’라는 희생자 숫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생존자들의 자책이 이 책임 부재의 공간을 빠르게 메워나갔다.

지난해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골목길이 경찰 통제 중인 가운데 이태원 상인 남인석씨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음식을 가져다 놓자 경찰이 위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해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골목길이 경찰 통제 중인 가운데 이태원 상인 남인석씨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음식을 가져다 놓자 경찰이 위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너는 살아남았다’는 혐오감은 아직도 생존자를 괴롭히고 있다. 효진씨는 ‘피해자도 가해자’라는 2차 가해 발언에 분노했다가, 뒤돌아서선 ‘정말 내 움직임이 누군가를 죽게 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고 고백했다.

생존자 동은진(23)씨도 자책감과 싸우고 있었다. 여전히 이태원을 찾지 못한다는 그는 “사람들이 사고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었어요. 제가 적극적으로 돕지 못했다는 점을 오래 자책했어요. 내가 그날 그곳에 가서 (밀집도가 올라가) 사람들이 다친 게 아닌가, 끝내 돕지 못해 참사가 커진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오래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책을 발간한,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김초롱씨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심폐소생술을 하지 못했던 자신을, 사고 직후엔 자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람을 좋아했던 효진씨는 이제 사람을 경계한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모욕적인 언사를 듣다 보니 “이제 (사람을) 잘 믿지 못한다”고 했다. ‘유가족은 민주당과 한패다’, ‘이태원 가서 살아남은 게 자랑은 아니지 않냐.’ 이 말은 효진씨가 참사 직후 급성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던 상황에서 자신과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였다.

효진씨는 “누군가를 만나도 이제 먼저 말을 건네기가 두렵다. ‘혹시 이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놀러 가서 죽지 않았냐’라는 말이 너무 큰 충격이었고, 가장 힘들었어요. 비난하는 이들을 이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당시 참혹한 현장을 못 봤을 테니까요.” 은진씨는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목을 죄어오기도 한다. 효진씨는 갑자기 답답함이 밀려와 몇번이나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와이어 달린 속옷은 모두 버렸다. 이전에는 전혀 벌어지지 않던 일들이다. 압박감 탓에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참사 이후 주변에 있던 평범한 사물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듯 느껴진다고 효진씨는 말했다.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는 이제 공포다. 효진씨는 “평범함을 상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동은진씨는 참사 이후 지하철을 타려다 숨이 가빠진 경험을 한 뒤, 택시나 자기가 운전하는 차로만 이동하고 있다. 은진씨는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며 “(참사의 경험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효진씨는 “아직 우리 사회는 참사를 겪은 피해자를 대하고 위로하는데 미숙한 것 같다. 참사가 그저 ‘남의 일’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며 피해자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을 거둬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8월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추모공간에 추모메시지들이 떨어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8월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추모공간에 추모메시지들이 떨어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유족 등에 대한 2차 가해 우려로 댓글창을 닫습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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