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건희를 수사하라’는 문구를 담은 진보당 현수막 수십개가 이달 중 서울 송파구와 서대문구에서 철거됐다. 구청 쪽은 특정인 비방 문구 등을 금지하는 시 조례를 현수막 철거 근거로 댔지만, 공인인 대통령 부인에 대한 수사 촉구를 담은 정치적 주장을 구청이 ‘자의적 해석’으로 철거해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진보당 서대문구위원회는 서대문구 독립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대문구청이 지난 12일 ‘김건희를 수사하라’는 진보당의 현수막 34개 가운데 20개를 철거했다”며 “국민 요구를 담은 현수막까지 철거해 용산에 충성경쟁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대문구청이 지난 11일 진보당에 보낸 공문을 보면, 구청은 ‘특정인의 실명을 표시해 비방하거나 모욕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 ‘옥외광고물 시 조례’를 철거 근거로 들었다. 관련 상위법 근거로 형법상 명예훼손과 모욕죄 조항도 적었다. 서대문구청 도시경관과 관계자는 한겨레에 “‘김건희를 수사하라’는 문구는 특정인을 비방하는 내용이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등 많은 민원이 있어 철거하게 됐다”고 말했다.
진보당은 현수막을 통해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관련 사건 수사를 촉구하는 정치적 주장을 담았다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손솔 진보당 수석대변인은 “공인인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수사 촉구가 어떻게 비방일 수 있느냐”며 “시 조례는 ‘표현의 자유’라는 상위 가치를 침해할 수 없고, 조례에 쓰인 비방이나 모욕에 대한 판단은 시시때때로 달라질 수 있을 정도로 불명확하다”고 했다.
“공인인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수사 촉구가 어떻게 비방일 수 있느냐”
“‘김건희를 수사하라’는 문구는 특정인을 비방하는 내용이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등 많은 민원이 있어 철거하게 됐다”
진보당 현수막은 지난 8일 송파구에서도 같은 이유로 강제 철거됐다. 손 대변인은 “송파구에 이어 서대문구까지 국민의힘이 자치단체장을 맡은 곳에서 현수막이 계속 철거돼, 다른 자치구도 우려된다”이라고 했다. 진보당은 오는 17일 서대문구청에 민원을 내고 송파구청과 서대문구청을 상대로 행정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김선휴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는 “권력자인 대통령 부인에 대한 수사 촉구를 이슈화하는 현수막을 지자체가 조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잘못 집행한 사례”라며 “진보당의 현수막 내용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에도 해당하지 않는 문구”라고 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