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씨가 고문 끝에 숨진 지 20년이 된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509호실에서 박씨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고인의 영정 앞에 꽃을 바치고 있다. 당시 박씨는 이 방에서 수사관들한테 물고문을 당하다가 숨졌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수인들만 처벌받았다…”
은폐·조작 지시했던 ‘관계기관대책회의’ 참석자들
잊혀진 세월속에 숨어 박종철씨 20주기를 맞아 아직도 드러나지 않고 있는 고문치사 사건의 ‘절반의 진실’을 이제는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박씨의 아버지 박정기(78)씨는 12일 한겨레 기자와 만나 “당시(진상을 은폐하도록 지시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씨는 “사실 하수인들만 처벌받았지 관계기관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처벌은 커녕 사과도 없었다”면서 “유족에게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7년 1월 14일 박씨가 고문으로 숨진 뒤, 고문경관과 범인 숫자를 은폐·조작한 경찰 간부들은 2차례나 재수사를 거듭한 끝에 모두 구속돼 법의 심판을 받았으나, 정작 은폐·조작을 지시하고 검찰의 재수사를 막았던 관계기관대책회의 참석자들은 처벌은 물론 지금까지 정확한 은폐·조작의 진상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안상수 전 서울지검 검사(현 한나라당 의원)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관계기관대책회의가 (고문 경관이 더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검찰 재수사를 하지 못하게 해놓고 안기부와 경찰이 나서서 (고문 경관과 그 가족들에 대한) 회유작업을 했다”면서 “관계기관대책회의 멤버들은 이제라도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치안본부장까지 구속됐지만 관계기관대책회의 참석자들이 아직도 진실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은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모습이 아니다”면서 “당시 사안에 따라 대책회의 멤버가 달라졌지만 아마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안기부장을 좌장으로 법무장관, 검찰총장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이 참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당시 안기부장은 장세동씨였고, 법무장관 김성기씨, 검찰총장 서동권씨, 청와대 정무1수석은 김윤환씨가 각각 맡고 있었다.
이들은 87년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뒤 모두 경질됐으나 서동권씨는 2년 뒤 노태우 정권에서 다시 안기부장으로 중용되는 등 5·6공화국 내내 실세로 군림했다. 장씨는 2002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포기한 뒤 2004년 17대 총선 때 서울 서초을에 출마해 낙선했다. 김성기 김윤환씨는 고인이 됐다. 장씨, 서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이택 임인택 기자 rikim@hani.co.kr
잊혀진 세월속에 숨어 박종철씨 20주기를 맞아 아직도 드러나지 않고 있는 고문치사 사건의 ‘절반의 진실’을 이제는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박씨의 아버지 박정기(78)씨는 12일 한겨레 기자와 만나 “당시(진상을 은폐하도록 지시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씨는 “사실 하수인들만 처벌받았지 관계기관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처벌은 커녕 사과도 없었다”면서 “유족에게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7년 1월 14일 박씨가 고문으로 숨진 뒤, 고문경관과 범인 숫자를 은폐·조작한 경찰 간부들은 2차례나 재수사를 거듭한 끝에 모두 구속돼 법의 심판을 받았으나, 정작 은폐·조작을 지시하고 검찰의 재수사를 막았던 관계기관대책회의 참석자들은 처벌은 물론 지금까지 정확한 은폐·조작의 진상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안상수 전 서울지검 검사(현 한나라당 의원)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관계기관대책회의가 (고문 경관이 더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검찰 재수사를 하지 못하게 해놓고 안기부와 경찰이 나서서 (고문 경관과 그 가족들에 대한) 회유작업을 했다”면서 “관계기관대책회의 멤버들은 이제라도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철 열사
이들은 87년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뒤 모두 경질됐으나 서동권씨는 2년 뒤 노태우 정권에서 다시 안기부장으로 중용되는 등 5·6공화국 내내 실세로 군림했다. 장씨는 2002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포기한 뒤 2004년 17대 총선 때 서울 서초을에 출마해 낙선했다. 김성기 김윤환씨는 고인이 됐다. 장씨, 서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이택 임인택 기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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