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행위를 당하다 자살한 병사의 조의금을 여단장이 가로챈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이 자살 사건의 실체도 은폐·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자살을 시도한 병사를 발견한 시각과 근무일지 등이 조작되고 부대원에게 거짓 진술을 하라는 압력이 가해졌다는 복수의 증언이 나왔다. 구급차 도착이 지연되면서 인명구조에 실패하자 간부들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사망시각 조작 등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인다. 2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2011년 12월4일 경기도 가평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 26여단 본부중대 김아무개(당시 20살) 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서 김 일병을 발견한 시각에 대한 군 수사기록과 병사들의 진술은 1시간~1시간30분가량 차이가 난다.
당시 김 일병의 선임이었던 김준수(23)씨 등 3명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2011년 12월4일 낮 12시30분에서 1시 사이에 김 일병이 목을 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군 수사기록에는 김 일병이 이날 오후 2시께 발견된 것으로 나와 있고, 국방부 전자의료정보시스템 ‘데미스’에는 김 일병의 사망 시각이 이날 오후 2시26분으로 기록돼 있다.
근무일지가 조작된 정황도 드러났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또다른 김아무개 일병은 ‘경계근무명령서’에 당일 오후 2시까지 근무한 것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김 일병은 유가족에게 써준 사실확인서에서 “낮 12시30분 근무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김 일병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경계근무명령서에는 당시 박아무개 상사가 결재한 것으로 돼 있지만 박 상사는 병가 중이었다.
구급차 출입기록도 의문을 더한다. 당시 구급차는 인근 부대인 35전차대대에서 26여단 본부중대로 이동했는데, 두 곳 모두 구급차 출입기록만 누락됐다. 이날 다른 차량 출입은 기록돼 있다. 국군일동병원이 구급차 도착 시각을 이날 오후 2시38분께로 ‘데미스’에 기록했을 뿐이다. 국군일동병원과 26여단 본부중대가 차로 20분가량 거리인 점을 고려하면, 김 일병 발견 뒤 응급차가 도착하기까지 최소 1시간20분 이상 걸린 셈이다. 이처럼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한 점을 감추려고 사망시각 등을 조작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나온다. 김 일병을 처음 발견한 병사들은 “김 일병에게 인공호흡을 했더니 숨소리가 들렸고 맥도 뛰었다”고 말했다. 군의관 정아무개 중위도 군 검찰에 “발견 당시 동공이 완전히 열리지 않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20~30분간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고 진술했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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