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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뇌종양 제보도 많은데 조사 안해…기업 뒤로 숨은 정부

등록 2014-08-11 00:53수정 2014-08-11 14:41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D램을 생산하는 경기도 이천공장의 내부 모습.  자료사진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D램을 생산하는 경기도 이천공장의 내부 모습. 자료사진
백혈병 다음으로 노동자 피해 커
정부, 실무자와의 면담도 “안 돼”

하이닉스도 문제 공식화했는데
고용부 “작업 환경 상당히 개선
질환 업무 관련성 결론 못 내린다”

위험물질 정보 공개 범위 넓히고
역학조사 방식도 개선해야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10일 백혈병 등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한 정밀 실태조사와 피해자 보상, 재발방지 대책 등을 약속하고 나섬에 따라, 국내 양대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모두 이 문제를 공식화한 셈이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피해 당사자와 시민단체, 언론이 문제를 제기한 뒤 여론의 압력을 받은 해당 기업이 협상과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양새가 반복됐다. ‘민복의 정부’가 뒷짐진 사이 ‘이윤의 기업’이 되레 먼저 나서 사태 수습을 강구하는 꼴이다.

정부는 최근 <한겨레> 보도를 통해 드러난 하이닉스의 실태에 대해서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1995~2007년 반도체 공정의 질환 관련성에 대한 정부 역학조사(2008년 완성) 이후 지속적인 위험성 평가를 수행하며 작업환경에 대한 개선 계획을 각 사가 수립·이행하도록 조처해왔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부의 적극적인 보건관리 모니터링을 통해 반도체 회사들의 작업환경과 관련한 주요 문제는 상당 부분 개선됐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10일 최근 제기된 백혈병 등 반도체 산업재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진은 경기도 이천 에스케이하이닉스 본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10일 최근 제기된 백혈병 등 반도체 산업재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진은 경기도 이천 에스케이하이닉스 본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하지만 이런 설명은 거짓에 가깝다. 지난해 1월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불산 누출로 5명의 사상자를 낸 뒤 두달간 진행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에서만 193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정부는 삼성전자 반도체 전 공장(화성·기흥·온양)에 대한 안전보건 진단도 추가 진행했는데, 기흥공장만 두고서도 “화학물질 관리 내용에서는 상당한 문제점이 거의 전반적인 활동에 걸쳐 관찰되고 있다”거나 “이러한 문제점이 최근 수년 동안 수차례 지적되었음에도 현재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게 정부의 총평이었다. ‘삼성 백혈병’ 논란이 7년 넘게 지속돼온 점에 비춰보면, 정부는 오랜 기간 무심하거나 무능했고 삼성전자는 무모했던 셈이다.

반도체 사업장에 대한 정부 역학조사의 한계도 적지 않다. 림프조혈기계 질환 발병이 잦은 공정의 노동자 집단을 따로 분석하지 않고 전 직원(인사자료상 각 사별 4만~5만명)을 분모로 삼아 사망률 등을 계산하기에 이른바 ‘고위험군’에 대한 정밀한 실태 파악이 불가능하다. 정부는 이런 역학조사를 토대로 “현재 단계에서 질환의 업무 관련성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만 말하고 있다.

정부는 역학조사를 2019년까지 지속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예방의학전문의)은 “지금 방식으로는 (2019년이 돼도) 질병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중요한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다. 림프조혈기계 질환의 잠복기가 긴 반면 추적 기간과 표본은 제한적이고, 건강 노동자 효과도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건강 노동자 효과란 신체검사를 거친 건강한 이들만 입사하기 때문에 노동자 집단의 건강 수준이 일반인 집단을 앞서는 현상을 이른다. 정부 역학조사에서는 이 점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림프조혈기계 질환을 앓고 있는 반도체 대기업 출신 한 노동자는 “역학조사 때 현장 근로자들이 작성한 답변을 팀장급들이 ‘이렇게 써도 되겠냐’면서 수정한다. 회사에 불리한 내용은 걸러진다”고 증언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진행하는 개별 역학조사는 불시가 아니고 사실상 세팅된 조건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정부 역학조사는 조사 대상 질환도 제한적이다. 반올림은 지난해 뇌종양 발병에 대한 역학조사도 추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산재 피해를 제보해온 노동자들 가운데 뇌종양이 두번째(첫번째는 백혈병 등 림프조혈기계 질환)로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실무 책임자와의 면담 신청도 허락하지 않았다. 김명희 상임연구원은 “생식독성, 혈액 이상 등에 대한 역학조사도 시급하다. 잠복기가 짧고, 수적으로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충분한 표본이 되기에 유의미한 결론도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들 뒤에 숨지만 말고, 위험물질 등 정보공개 범위를 넓히고 역학조사 방식도 개선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관련 기사 : [단독] 하이닉스 “발병·작업환경 실태조사 하겠다”

▷ 관련 기사 : ‘삼성 백혈병 협상’ 지지부진

▷ 관련 기사 : “반도체 신물질 위험성 거르는 절차 거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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