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전 합참의장
[짬] ‘군인 김진호’ 회고록 낸 김진호 전 합참의장
1997 대선 때까지 보수강경론자 고수
세아들 현역복무에 디제이 편견 바꿔 하나회 견제하자 장세동에게 항의도
“야당과 정보공유해 북한 대처해야”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 전하고파 “그때 2군사령관이었어요.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맞섰던 97년 대선 때였어요. 솔직히 군 정서는 ‘김대중은 곧 빨갱이’였어요. 그래서 ‘저런 공산주의자가 대통령이 되면 큰일인데’라고 걱정했어요. 그때 모교인 배재고에서 ‘자랑스런 배재인상’을 준다고 해서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김 후보의 큰아들인 홍일씨가 동석했어요. 그는 배재중 출신이었어요.” 그때 홍일씨는 자신이 공군 장교 출신이라고 인사를 했다. 내심 그는 ‘공산주의자’의 아들이 장교 출신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직계 조상은 물론 친척 중에 공산주의 전력이 있으면 신원조회에 걸려 장교 임용이 불가능하잖아요?” 더 놀란 것은 둘째 홍업씨도 학군사관 후보생 출신의 장교였고, 셋째 홍걸씨도 육군 현역 출신으로 삼형제가 모두 군 복무를 마쳤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직접 국군기무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까지 했다. ‘빨갱이 전력’이 있는 아버지를 둔 아들이 장교가 될 수 있는지를. 그러자 기무사령관은 “김 후보는 빨갱이가 아니다”고 답변을 했고, 그제야 그는 오랜 편견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아침 상황보고 시간을 통해 “김대중이 빨갱이라는 것은 정치적 문제로 덧칠해진 사안”이라고 그동안 자신의 발언을 수정하며, 누구를 대통령으로 찍을지는 각자 판단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전 국방부 인사과장 시절 인물을 추천할 때면 “전라도 사람이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어봐야 했고, 고위급 장교나 장군의 상위 진출 비율에 호남 출신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서울 출신인 그는 “호남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가해자였다”고 말하며 “지역색을 극복하지 않으면 성숙한 사회로 진입을 못 한다”고 덧붙였다. 대령에 진급하고도 연대장 보직을 받지 못했던 그는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견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새벽 일찍 장세동 청와대 경호실장에게 직접 전화로 따졌던 일화도 털어놓았다. 소령에서 대령까지 그와 세차례 같이 근무한 장세동은 그 즉시 하나회 핵심 관계자에게 “차라리 김진호를 전역시켜 버려라”고 강경한 어조로 항의했고, 그 덕분에 인사 불이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나회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이야기다. 전방 지오피(GOP) 담당 연대장으로 근무할 때는 내무반 사고를 없애기 위해 전방 근무자를 뽑은 나름대로의 기준도 제시했다. “최전방이라는 특수공간에 투입하는 병사는 우선 얼굴이 환한 인물을 선발했어요. 얼굴에 근심 걱정이 있으면 배제했죠. 영화배우 신영균이나 노주현 같은 인상이면 적격이었어요. 또 부모님 다 계시고 형제가 많은 집안의 병사, 그리고 애인이 있는 병사도 우대했어요.” 그는 술자리에서 벌어진 실수도 숨기지 않았다. “대대장급 이상 부부 동반 회식을 할 때였어요. 무대에서 흥에 겨워 춤을 추다가 앞에 있는 참석자가 동료인 줄 알고 머리를 뒤에서 받는 장난을 쳤는데 ‘어느 놈이냐?’고 소리치며 돌아보는 이는 사단장이었어요.” 화가 난 사단장은 회식을 중단하고 공관으로 들어가버렸고, 결국 그는 공관까지 따라가서 사죄를 해야 했다. 그때 사단 헌병대에서는 ‘하극상 보고’까지 올렸지만 사단장이 용서를 해준 덕분에 그는 불명예스럽게 끝날 뻔한 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대북 문제에 대해서 그는 여야가 하나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합참의장으로 99년 6월의 서해 연평해전을 지휘했던 그는 “북한은 가공할 전력을 갖고 있어요. 국가 안보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생존이 달린 현실 문제입니다.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정부가 야당과 함께 대처를 해야 북한을 끌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빙상과 권투, 럭비, 마라톤 등 운동을 잘해 군 생활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그는 “고교 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해 열반에 배정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암기과목 위주로 노력해 대학(고려대)에 진학했고, 군 최고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며 “내 삶의 경험이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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