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주민등록을 되찾은 이차술씨가 자신이 자원봉사를 하는 다일공동체에서 청소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짬] 노숙자 출신 ‘밥퍼’ 봉사자 이차술씨
12살때 농약 먹고 죽으려다 살아나
세상 등지고 한평생 거리 부랑아로
주민등록증을 들고 서 있는 이차술씨.
최일도 목사 주선으로 쪽방생활 10년
세례 받고 노점상하며 ‘배식’ 봉사도 이씨가 사는 곳은 아직도 청소년 출입금지 구역이 있는 청량리역 뒷편. 20대부터 넝마를 줍고, 싸움질을 하며 살아온 동네다. 몸을 팔아 살아가는 여인들이 우굴거렸고, 전국에서 거지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4일 첫번째 인터뷰는 단 3분만에 끝났다. 그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야기 못해요.… 과거가 아파요. 그냥 잊고 살고 싶어요.” 어깨를 들썩이며 돌아서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유달리 험난했던 그의 지난 날은 되새기는 것조차 엄청난 고통인 듯 했다. 나이에 비해 10년은 더 들어보이는 그의 주름진 얼굴에 성한 이가 거의 없다. 젊은 시절 함께 거리를 떠돌던 친구들은 대부분 일찍 죽었다. 추운 겨울엔 얼어 죽었고, 감기만 걸려도 저항력이 약해 쉽게 죽었다. 그들은 대부분 게을렀다. 이씨 역시 체질은 약했지만 부지런한 편이어서 병엔 걸리지 않았다. 지붕도 없이 철거하다가 중단한 듯한 폐가에서 한 겨울을 버텨야 했던 시절이었다. 비교적 건강했던 그였으나 지난해 10월께 한많은 삶을 마감할 뻔 했다. 뇌의 핏줄이 팽창해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비가 1천만원 필요했다. 그래서 지난 30년동안 말소됐던 주민등록을 되살렸다. 서울시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애초 가망이 없다고 예상했으나, 다행히 수술 뒤 아무런 후유증이 없다. 그는 10년 전부터 최일도 ‘밥퍼’ 목사가 마련해 준 쪽방에서 살고 있다. 그 이전까지 무려 17년을 노숙자로 살았다. 거리에서 만난 최 목사는 지금껏 27년간 그를 보살펴 준 은인이다. 이씨는 집 주변뿐 아니라 동네를 청소하고, 다일공동체로 가서 무료 급식 자원봉사를 한다. 청소도 하고 배식도 한다. 최 목사가 청량리에서 노숙자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며 처음 봉사를 할 때 만난 이씨는 지난해까지 동갑인 최 목사에게 형님 대접을 받았다. 외모가 형님뻘이었기 때문이다. 야간 중학을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젊은 시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냥 ‘만우 할배’로 불렸다. 누구도 그의 본명을 알지 못했다. 지난해 세례를 받을 때도 가명을 썼다.
27년 전 서울 청량리역 근처에서 노숙하던 시절의 이씨(왼쪽).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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