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전문의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가운데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을 직접 진료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의사도 10명 중 6명이 넘었다.
이는 지난해 말 대한소아응급의학회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의료인 신고의무자용 아동학대 및 노인학대 선별도구 개발’ 최종보고서를 <한겨레>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의료인들이 체감하고 있는 아동학대의 심각성은 기존 통계나 일반인들의 막연한 인식을 크게 웃돈다. 보고서에 담긴 설문은 지난해 5~7월 대한소아과학회와 대한응급의학회 회원 574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245명이 응답했다.
참여 비율이 낮아도 통계 의미는 작지 않다. 아동학대 신고율이 낮은 국가에서 어린이를 직접 진찰하는 의사들의 ‘체감 위험도’는 학대 실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186명(75.9%)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가 어느 정도 심각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심각하다’, ‘다소 심각하다’고 답했다. 154명(62.9%)이 실제로 아동학대가 ‘자주’ 혹은 ‘매우 많이’ 일어난다고 응답했고, 직접 학대가 의심되는 아이를 진료한 적이 있는 의사도 127명(61.8%)에 이르렀다. 하지만 학대아동을 진료한 의사 10명 가운데 4명이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의료진의 학대아동 발견도 ‘빙산의 일각’일 수밖에 없다. 보호자가 가해자인 아동학대의 특성상, 부모가 학대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자녀를 제때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집계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7789건에 이른다. 2013년 1만3076건에 비해 36%, 10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법제도의 개선과 인식의 변화 등으로 신고율이 높아진 덕이다. 신고 사례 가운데 학대 혐의가 있다고 확인된 경우는 9823건이었다. 18살 미만 아동 1000명당 1명이 넘는다. 학대 가해자 가운데 82.1%(8068건)가 ‘부모’이고, 학대 발생 장소의 86.1%(8458건)가 ‘집 안’이다. 학대를 받은 10명 가운데 4명이 ‘매일’ 학대를 당했다.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현황은 신고가 활발한 국가에 견줘 많이 낮은 수준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한해 동안 우리나라 인구(5000만명)의 6배가 넘는 미국은 우리보다 225배 많은 신고(293만7052건, 46개주 집계)가 접수됐다. 인구가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한국의 19배(25만2962건)가 신고됐다. 이는 우리나라의 아동학대가 적은 게 아니라, 신고가 적어서 나타나는 차이일 가능성이 크다.
임지선 류이근 임인택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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