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난 4월 초, 연수(가명)의 학대를 신고‘했어야’ 하는 신고의무자들을 만났다. 연수의 멍을 6월과 7월 목격한 어린이집 교사는 지난 4월 <한겨레>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신고의무자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왜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에 대한 답이었다. 다른 어린이집 교사는 반복되는 질문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알려지기 두렵다”며 “학기 초인데 연수의 이야기가 다시 불거져 학부모들에게 소문날까 조심스럽다”고 했다. 이 어린이집의 교사들은 연수의 죽음과 관련해 참고인으로 경찰에 진술해 학대 사실을 증언하기도 했다.
연수를 진찰했던 의사들은 하나같이 “의료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연수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했다. 처음으로 연수의 학대 사실을 알아차린 정신과 의사나 연수가 응급실에 실려왔을 당시 연수를 본 간호사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번 수술을 이유로 자리를 피한 의사도 있었다.
이들은 신고의무를 어겼으므로 현행법 위반이었다. 2012년 8월 개정된 아동복지법에는 처음으로 신고의무 불이행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2014년 새롭게 제정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과태료를 500만원으로 인상했다. 하지만 어린이집과 병원은 이와 관련해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법상 조사 주체는 시청 등 지방자치단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2013년 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울주아동학대 사건(서현이 사건)에서도 신고의무를 어긴 어른들에게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았다. 법과 행정 절차는 마련돼 있지만 다분히 형식적이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신고의무를 어겨서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부산)가 단 한 건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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