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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도미노 가정폭력…아빠는 엄마를, 엄마는 아이를 때렸다

등록 2015-05-06 21:40수정 2015-05-07 15:07

아동학대는 돌고 돈다. 학대받은 아이의 70%가 학대하는 부모가 된다는 통계도 있다. 사진은 엄마로부터 학대를 받는 아이가 점점 자라 성인이 된 뒤에 본인 역시 학대하는 어른이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세이브 더 칠드런 제공
아동학대는 돌고 돈다. 학대받은 아이의 70%가 학대하는 부모가 된다는 통계도 있다. 사진은 엄마로부터 학대를 받는 아이가 점점 자라 성인이 된 뒤에 본인 역시 학대하는 어른이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세이브 더 칠드런 제공
[탐사기획] 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④ 가해
돌고 도는 폭력의 사슬
신우(가명)는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친가·외가 모두 스무살짜리 아빠와 한살 어린 엄마의 임신과 출산을 질책했다. 환대받지 못한 어린 부부는 우는 아기를 달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다툼이 일상이 됐다. 신우가 태어난 지 한달이 되던 2014년 2월 어느 날, 부부는 심하게 다퉜다. “신우를 없애자”는 말을 꺼낸 건 아빠였다. “나가 있으라”는 그의 말에 엄마는 현관으로 향했다. 아빠는 우는 아이를 냉동실에 넣었다.

6일 <한겨레>가 2008~2014년 학대로 사망한 112명의 가정 110곳을 들여다봤다. 법원 판결문, 검찰 공소장 및 사건기록 등을 근거로 삼았다. 110곳 안에는 아이의 죽음을 가져온 각자의 곡절이 있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45건(40.9%)에서 공통적으로 ‘가정불화’가 확인됐다.

많은 사례에서 아빠의 폭력이 앞섰다. 맞은 엄마는 이어 아이를 때렸다. 혁이네가 그랬다. 엄마는 아빠에게 맞아 의치가 부러졌고, 고막이 터졌다. 아빠가 없을 때 엄마는 다섯살 혁이를 발로 찼다. 2008년 12월, 혁이는 복막염으로 죽었다. 엄마가 혁이를 얼마나 때렸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판결문에 ‘한달여’ ‘수차례’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강도는 상당했을 것이다. 지민이네도 부부싸움이 시작이었다. 엄마는 지민(2)이를 때린 사실을 인정했다. 부부싸움 뒤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민이는 2008년 초 두개골 골절로 숨졌다.

확인된 열 중 아홉 ‘가정불화’
불화 이유는 ‘경제 곤란’ 67%

어릴 적 학대당한 부모가
가해자 될 가능성도 높아

지은(4)이네도 부부싸움이 컸다. 몽골에서 와 의지할 데 없던 지은이 엄마는 우울증에 빠졌다. 지은이에게 밥을 주지 않았고,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았다. 2011년 여름, 지은이는 저혈당 쇼크로 입원했다. 병원에서 엄마는 애를 자신과 떼어놓으려고 한다고 오해한 끝에 아빠를 살해했다. 지은이도 저혈당, 천식에 뇌부종까지 겹치면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의 턱에서는 멍이, 뺨에서는 상처가 발견됐다.

가정불화가 아이의 죽음으로 이어진 형태에는 직접적인 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부싸움 뒤 ‘분풀이’는 아이에 대한 방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0년 2월, 호경이는 아빠와 엄마가 부부싸움 뒤 자리를 비운 지 네시간 만에 이불에 질식해 숨졌다. 태어난 지 한달 만이었다. 생활비 문제로 다투던 아빠가 “화를 삭이겠다”며 밖으로 나가버렸고, 한참 뒤 엄마도 집을 나섰다.

아동학대 사망과 가정불화의 관계
아동학대 사망과 가정불화의 관계
불화의 밑바닥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정불화를 겪은 45곳 가운데 경제적 곤란을 겪었다고 밝힌 가정이 30곳(66.7%)에 이른다. 친부가 무직인 경우도 23곳(51.1%)이다. 2014년 2월 대낮에 부부가 서로의 머리채를 잡았다가 태어난 지 40일이 갓 지난 재석(가명)이를 던져 숨지게 만든 것도 발단은 생활비 부족이었다. 일용직이던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해 3월에 있었던 사랑(가명)이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아빠는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엄마는 직장을 구해 혼자 기숙사로 들어갔다. 아빠는 자포자기했다. 잠을 자지 않고 보채는 두살배기 사랑이를 때려 숨지게 만든 건 그로부터 열흘도 되지 않은 때였다. 아빠는 그 순간을 “처지를 비관해서”라고 경찰에 답했다.

2006~2013년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경우를 분석한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정성국, 2014) 논문을 보면, 자식을 살해한 동기 230건 가운데 가정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102건으로 거의 절반(44.6%)에 이른다. 다음으로는 경제문제 62건(27%), 정신질환 55건(23.9%) 차례다. 보건복지부에서 펴낸 ‘아동학대 사망 관련 지원서비스 체계화 방안 연구’(2012)를 보면, 부부간 폭력이 있는 경우에는 폭력이 없는 경우에 비해 아동에 대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4.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준석(가명)이 아빠는 어려서부터 맞고 자랐다. 준석이 아빠는 나이를 먹어서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했다. 대신 세살배기 아들 준석이에게 폭력을 대물림했다. 2010년 12월, 준석이는 울면서 방문을 걷어찼다는 이유로 맞아 숨졌다.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나고 얼굴에 자주 멍이 들던 준영(10)이의 죽음에서도 할아버지의 흔적이 보인다. “준영이 아빠가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많이 받고 자랐다”는 엄마의 증언이 남아 있다. 준영이 아빠는 폭력을 물려받았지만, 정작 준영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는 몰랐던 듯하다. “아동의 부가 아동을 사랑하기는 하나 아동을 양육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듯하다”는 게 준영이 담임선생님이 남긴 진술이다. 결국 준영이는 아빠가 피운 번개탄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김효원 울산대 교수(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는 “가족 내 아동을 향한 폭력은 가족 내 갈등을 풀면서 가장 쉬운 방법과 대상을 찾은 것”이라며 “폭력의 대물림은 어릴 때부터 가정 내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결과”라고 말했다.

하어영 류이근 기자, 자료분석 서규석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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