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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망 110건, 형사처벌 61건…학대에 관대한 법의 저울

등록 2015-05-06 21:46수정 2015-05-07 15:03

[탐사기획] 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④ 가해
가해자 형량 분석
2012년 10월 인천지방법원에서 혁이(가명·10개월)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었다. “피고인 김○○를 징역 1년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2년간 피고인에 대한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김씨는 혁이 엄마다. 한창 배밀이를 하고 기어다니던 혁이는 소파와 침대에서 자꾸 떨어졌다. 죽기 전에는 열흘 동안 세차례나 낙상이 반복됐다. 이마에 멍이 들고 광대뼈와 팔이 부러졌다. 분유를 토하는 증세도 보였다. 혁이는 뒤늦게 병원에 갔고, 입원 닷새 만에 머리 부상으로 사망했다. 혁이 허벅지에는 누군가 꼬집어 생긴 피멍 자국도 여러 군데 있었다. 해당 지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혁이가 방임과 신체학대를 당했다고 판정했다.

법원은 김씨에게 과실치사죄와 아동복지법 위반죄를 적용했다. 엄마가 아이를 잘 돌보지 않아 실수로 죽게 했을 뿐 살인의 고의성은 발견되거나 입증되지 않았다. 판사는 김씨가 전과가 없고, 어린 두 자녀를 키우고 있으며 임신중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 가해자 사법처리
아동학대 사망 사건 가해자 사법처리

사망 110건 중 형사처벌 대상 61건뿐
무기 1명 제외한 평균 형량은 6.4년
집행유예로 풀려난 가해자 열 중 두명
대부분 살인죄 적용않고 치사죄 적용
“자식 죽임으로써 이미 고통” 단골 표현

■ 살인죄 적용은 10건 중 1건

<한겨레>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법원 판결문과 신문기사 등을 바탕으로 아동학대 사망 110건의 사법처리 현황을 분석했다. 이 중 형사처벌 대상이 된 사건은 61건이었다.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진행중인 가해자는 79명(복수 가해자 18건)이었다. 이들 중 51명(64.6%)이 징역형 실형을 선고받았다. 18명(22.8%)에게는 징역형의 집행을 일정 기간 면제하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실형의 평균 형량은 무기징역 1명을 제외하고 6.4년이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 중 살인죄가 적용된 경우는 10건 중 1건꼴에 불과했다. 형사처벌 사건 61건 중 상해치사가 14건(23.0%), 학대치사 11건(18.0%), 폭행치사 7건(11.5%), 과실치사 5건(8.2%), 유기치사 5건(8.2%) 등이었다. 형사처벌 사건의 70%가량에 살인의 고의성이 증명되지 않는 ‘치사죄’가 적용됐다. 치사죄보다 형량이 더 높은 살인죄가 적용된 경우는 7건(11.5%)에 그쳤다. 아동을 때리고 상처를 입혀 사망에 이르게 하더라도, 대체로 살인의 고의는 없는 것으로 보거나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법조 관계자는 “검찰이나 법원이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해 관행적으로 살인죄보다는 형량이 낮은 상해치사나 학대치사를 적용해온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경우 일반 살인 사건에서 쓰이는 흉기가 쓰이지 않고, 사건을 지켜보는 목격자도 거의 없어 고의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점 등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법 적용이 이뤄지고 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 판결에 대한 단골 비판이기도 하다. 심지어 2010년에는 6살 친아들을 때려 죽음에 이르게 했는데도, 법원은 가해자인 엄마에게 남은 자식의 양육 등을 이유로 상해치사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2013년 말 발생한 울주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서현 사건)은 이런 흐름을 뒤엎는다. 1심 재판에서 ‘상해치사죄’를 받은 사건을 항소심인 부산고등법원이 ‘살인죄’를 적용한 것이다. 성인의 주먹과 발이 아동에게는 흉기나 마찬가지일 수 있고, 가해자가 폭행 과정에서 아동의 생명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는 점에서 살인죄를 적용한 것이다. 이는 흉기 사용이 없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한 상징적인 사례다.

■ 집행유예 비율 23%

아동학대 사망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람은 18명으로 22.8%에 이른다. 일반 살인죄의 집행유예 비율(21.8%)과 비슷하다. 그러나 신생아를 낳자마자 살해하는 영아살해죄를 포함하면 아동학대 사망 범죄의 집행유예 비율은 44.9%까지 올라간다.

앞으로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비교적 관대한 처벌이라 할 수 있는 집행유예 비율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새로 제정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폭행치사나 유기치사, 감금치사 등 치사죄로 사망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처벌 수위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5년 이상의 형은 집행유예 대상이 되지 않는다.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의 피해 아동 평균 나이는 3.6살이었다. 전체 학대사망 사건 피해 아동의 평균 나이인 4.6살보다 1살 어렸다. 피해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가해자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확률이 높았다. 아이가 어릴 경우 실제 가해자의 단순 과실로 죽을 확률이 높고, 아이를 고의로 죽였다 하더라도 가해자의 고의성을 증명해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판결문에는 “자식을 죽임으로써 가해자가 이미 고통을 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이는 자신의 부모 등을 죽이는 존속살해가 다른 살인 범죄보다 더 가혹하게 처벌받는 것과는 반대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적절한 처벌을 위해서는 꼼꼼한 수사와 부검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초기 단계부터 경찰 수사를 체계적으로 하고 부검 등을 꼼꼼하게 해서 증거를 바탕으로 범죄의 의도와 흐름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채종민 경북대 의대 교수(법의학과)는 “판사가 엄중한 판결을 내리려면 그만큼 증거가 확실해야 한다. 현재는 부검 및 수사 단계가 부실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엄중한 판결을 내리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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