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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잊을 수 없는 기억, 알려지지 않은 진실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6-07-01 15:51수정 2022-08-19 16:44

[더(The) 친절한 기자들] 올 상반기 결산-상
2016년 상반기는 스러진 목숨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봉합하는 새 5명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5년간 당국이 수수방관하는 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썼던 수백 명이 숨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비뚤어진 반감과 혐오의 칼날에 희생된 23살 여성도, 노동을 천박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차마 못다 핀 19살 지하철 하청 노동자의 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을 정리했습니다.

1. 한·일 ‘위안부’ 합의(1월): 한 해의 문을 연 졸속 ‘합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25년간 이어온 투쟁은 이 한마디로 빛바랬습니다. 새해를 나흘 앞둔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습니다.

■ 알려진 것: 12·28 합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합의 내용은 크게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여부 △피해자 배상 문제 △소녀상 이전 문제 등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혀 이전보단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국가 범죄라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법적 책임'이라고 명시하진 않았습니다. 또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을 내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지만, 배상금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도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이전·철거해달라는 일본 측 요구에 대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설치된 소녀상이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키거나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이전을 요구해왔습니다.

■ 알려지지 않은 것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김진수 기자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김진수 기자

1) 소녀상 이전되나?

비판이 거세지자 한국 정부는 “소녀상 이전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사항”이 아니라며 논란을 일축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편집국장단 오찬 간담회에서도 “소녀상 이전은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언급도 안된 문제”라고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명색이 ‘합의'인데 양쪽의 목소리는 자꾸만 엇박자를 냅니다.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관방부장관은 지난 4월 일본 방송 티브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위안부 재단 지원과 소녀상 철거는 패키지”라고 말했습니다. 소녀상 이전, 진실은 무엇일까요?

2) 배상 없는 지원으로 갈등이 봉합되나?

정부는 5월31일 12·28 합의 이행을 위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 설립 준비위원회(준비위)를 출범시켰습니다. 재단이 설립되면서 이사로 활동할 준비위원 11명 중 과반이 전·현직 관료가 차지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결국 합의에 반대하는 시민 10만여명이 십시일반 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을 세웠습니다. 합의와 치유보다는 진실 확인에 무게를 두겠다는 취지입니다.

올해 들어 ‘위안부’ 피해자 다섯 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는 41명이 됐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2. 테러방지법과 필리버스터(2~3월): 최장의 필리버스터 뒤 가장 센 놈이 왔다

꽃샘추위와 함께 빅브라더가 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에 테러방지법이 없는 것을 IS도 알아버렸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뒤,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청와대와 여당의 총공세가 시작됐습니다. 야당은 마침표 없는 토론으로 맞수를 뒀습니다.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 법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하고 있다. 무제한토론이 시작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가 의석이 텅 비어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 법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하고 있다. 무제한토론이 시작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가 의석이 텅 비어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알려진 것

1) 테러방지법이 뭐기에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이 2월22일 대표발의해 3월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 이 법안의 핵심은 당신이 ‘테러 위험인물’로 지정되면 국정원이 영장 없이 계좌 등 금융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테러를 선동한다고 생각되는 글은 ‘긴급 삭제'할 수도 있으며, 테러 단체 조직원이 아니더라도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테러 위험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관련 기사 )

2) 필리버스터는 왜 멈춰야 했나

야당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으로 맞섰습니다. 필리버스터는 다수당의 폭주를 막는 합법적 수단입니다. 토론이 이어지는 동안은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기 때문이죠. 필리버스터가 국회에 다시 등장한 것은 52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인권 침해 가능성이 큰 법안만큼은 통과시킬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 필리버스터는 9일간 190여 시간 넘게 이어지며 무수한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안은 끝내 필리버스터 관문을 뚫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4월 총선을 앞두고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토론을 멈추지 않으면 본회의에 상정된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필리버스터 중단을 요구하며 “선거 망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라고 소리 질렀다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국회 밖에서 토론을 이어가던 시민들은 “필리버스터는 야당만의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 알려지지 않은 것

국무총리가 이끄는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10일 초대 대테러센터장에 육군 특수전사령부 부사령관 출신인 문영기 예비역 준장을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인권 침해를 막을 ‘유일한’ 거름막인 인권보호관은 아직도 임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 와중에 국정원은 지난달 19일 이슬람국가(IS)가 한국인 테러를 선동했다며 테러 대상에 포함된 김아무개씨의 실명과 거주지를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통해 김아무개씨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정원은 “미스테이크(실수)였다. 대국민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고 해명했습니다. 확인도 안된 정보로 시민의 신상을 노출한 겁니다. 당신의 개인정보와 인권, 괜찮을까요?

3. 이세돌-알파고 세기의 바둑 대국(3월): “나의 패배이지 인간의 패배가 아니다”

“누가 이겨도 인류의 승리다.”

지난 3월 인간 대 인간의 창작품의 대결을 앞두고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이 한 말입니다.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국, 결과는 일단 인간의 패배였습니다. 이세돌 9단은 5번의 대국 중 단 한번 이겼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그 한번의 승리였습니다. 이세돌 9단은 대국을 끝내며 “인간의 패배가 아니고 나의 패배일 뿐”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이세돌 9단이 지난 3월15일 오후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마친 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세돌 9단이 지난 3월15일 오후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마친 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알려진 것

1) 인공지능의 실험, 왜 바둑이었나?

바둑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인공지능이 정복하기 어려운 분야로 알려졌습니다. 체스와 비교해 볼까요. 체스에선 말을 움직이는 방법이 제한돼 있지만, 바둑은 돌을 자유롭게 놓는 식입니다. 그만큼 경우의 수도 다양합니다. 10의 170제곱으로,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모든 원자 수(10의 80제곱)를 합친 것보다도 많습니다.

2) 알파고는 어떻게 이세돌을 이겼나?

알파고는 4번 모두 불계패로 이겼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요? 인간과 달리 알파고는 잠시도 쉬지 않고 스스로 자기 학습을 합니다. 이를 ‘딥 러닝'이라고 합니다. 알파고의 하루는 인간의 35.7년에 달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100만번의 대국을 학습하는 데 4주가 걸립니다. 사람의 속도로는 1000년이 걸립니다.

■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

기계도 인간의 지능과 인격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아직 아니”라고 말합니다. 먼저 기계는 바둑에서 이길 순 있어도, 아직 자신의 수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유신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사람이 바둑을 안다는 것은 자기가 둔 수를 설명하거나 이론을 만들거나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자신의 수를 추상화해 설명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계는 고도로 진화한 인간행동을 모방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컴퓨터에게 쉽고, 인간에게 쉬운 것은 컴퓨터에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걷기는 인류 등장 이전부터 진화해온 것입니다. 기계가 단시간에 터득할 수 없죠. 알파고에게 로봇 팔이 없었던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알파고에게) 얌전하게 바둑알을 내려놓도록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세돌 9단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알파고의 승리는 ‘실력’이 아닌 ‘마음’의 승리였다고 했습니다. 작은 환경 변화에도 컨디션이 요동치는 사람에 비해, 안팎의 환경과 무관하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기계의 승리 비결이었다는 것입니다.

4. 4·13총선(4월): ‘정신 안 차려서’ 훅 갔나

지난 4월 총선은 모두의 예측을 뒤엎었습니다. 국회 의석 과반이 점쳐지던 새누리당이 122석에 그치며 원내 2당이 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23석, 국민의당은 38석을 챙겼습니다. 여당의 참패에 시민들은 새누리당이 총선을 앞두고 내건 문구를 소환했습니다. “정신 안차리면 훅 간다”, “잘하자 진짜.” 말한 대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예상보다 선전한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도 “여당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것이지, 야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고 잘라 말합니다. 기반 지역인 호남에서 대부분의 의석을 국민의당에 내어준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4·13총선은 어느 때보다 냉정한 민심이 정확하게 반영된 선거였습니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맨 앞줄 왼쪽 둘째)과 원유철 원내대표(맨 앞줄 왼쪽 셋째)를 비롯한 지도부들이 지난 4월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당사에 오지 않은 김무성 대표의 자리는 비어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맨 앞줄 왼쪽 둘째)과 원유철 원내대표(맨 앞줄 왼쪽 셋째)를 비롯한 지도부들이 지난 4월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당사에 오지 않은 김무성 대표의 자리는 비어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알려진 것

1) 옥새파동과 셀프공천

두 거대정당은 공천 과정에서 앞다퉈 잡음을 냈습니다. 새누리당의 옥새파동은 당내 계파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이한구 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비박계를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불만이 쏟아지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5곳을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고 부산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당 대표 직인이 찍힌 공천장이 접수되지 않으면 출마할 방법이 없어 ‘옥새 파동’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공천을 받지 못한 예비후보 2명은 총선 이후 김 전 대표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셀프공천’ 논란이 일었습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스스로를 당선 확정 순번인 비례대표 2번에 배치한 것입니다. 비례대표 1번을 따낸 박경미 의원은 홍익대 교수 시절 제자의 석사논문을 베낀 것이 확인돼 부실 검증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2) 여소야대, 캐스팅보트

여당이 국회 의석 300석 중 150석 이상을 얻지 못하면서 ‘여소야대’ 국면이 됐습니다. 또 두 거대정당 중 누구도 과반의석을 얻지 못해 3당인 국민의당에 관심이 모였습니다. 어느 정당도 국민의당의 협조 없이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양당의 대치 국면에서 국민의당이 결정권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캐스팅보트를 쥐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20대 총선에서 ‘부산 선거혁명’의 주역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5명이 지난 4월22일 부산 동구 초량동의 차이나타운 골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재호(남을)
20대 총선에서 ‘부산 선거혁명’의 주역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5명이 지난 4월22일 부산 동구 초량동의 차이나타운 골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재호(남을)

3) 독수리 5형제

이번 총선에서는 지역주의에 파열음을 낸 당선자들이 화제가 됐습니다. 낙동강 벨트의 구심점인 부산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의원 5명을 ‘독수리 5형제’라고 합니다. 김영춘, 김해영, 박재호, 전재수, 최인호 의원을 말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대구에서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번의 낙마 끝에, 새누리당 험지라는 순천에서는 이정현 의원이 재선돼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 알려지지 않은 것

시민단체가 특정 후보를 상대로 낙선운동을 벌이면 선거법을 위반하는 것일까요? 선례를 보면 아닙니다. 기자회견에서 낙선을 외치면 어떨까요? 선관위의 입장은 ‘선거법 위반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지난달 16일 총선 때 낙천낙선운동을 벌인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들이 기자회견에서 확성 장치를 사용하고 후보자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설치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압수수색 당사자인 이재근 참여연대 정책기획실장은 “후보자 이름이나 얼굴이 나오면 선거법 위반이라는 선관위 말에 따라 기자회견 때 후보자 이름이나 얼굴이 보이지 않게 구멍 뚫린 피켓을 썼다”고 했습니다. 뒤끝 트집 잡기가 아닌지, 경찰의 공정한 수사를 지켜볼 일입니다.

5. 가습기 살균제 파동(4월~): 5년 동안 방치된, ‘안방의 세월호'

올해 13살인 임성준 군은 12년째 허리춤까지 오는 산소통을 달고 있습니다. 코와 폐가 할 일을 산소호흡기가 대신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입니다. 돌을 갓 넘길 때 가습기 살균제 속에 포함된 독성물질 때문에 폐가 손상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부터 올해 5월31일까지, 임군과 비슷한 피해를 보았다고 신고한 피해자는 2336명에 달합니다. 그중 사망자가 462명입니다.

전재수(북·강서
전재수(북·강서

■ 알려진 것

1)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무엇?

가습기살균제에 포함된 독성물질로 폐가 손상되는 것을 말합니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GH)이 원인으로, 주로 물티슈, 액정클리너, 손 세정제 등에 사용되던 화학물질입니다. 독성물질에 노출되면, 심할 때는 폐가 급속히 굳습니다. 폐섬유화는 죽음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2)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기업은?

영국계 다국적기업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온 옥시레킷벤키저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옥시는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181명입니다. 또 제품에 독성물질이 포함된 사실을 알면서도 증거를 인멸한 혐의도 있습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지 3개월 만에 민원을 접수했지만 안전성 검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2010년부터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포함된 제품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 왜 한국만 문제인가?

옥시는 영국계 다국적기업입니다. 북미,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왜 한국에서만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생긴 걸까요? 국외에서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용도를 제한하지만, 한국에는 관련 법 규정이 아예 없습니다. 유럽연합만 해도 등록되지 않은 화학물질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한국의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에는 없는 제도입니다.

4) 가습기 살균제 사태, 왜 이제야 이슈가 됐나?

기업, 정부, 검찰 모두 일찍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시계추를 돌려보겠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처음 확인된 것은 2011년 5월입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임산부 8명 중 4명이 숨지고 3명은 폐이식을 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석달 뒤인 2011년 8월,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손상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그해 11월에는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에서 파는 6가지 제품에 대해 수거와 판매 중단 명령을 내렸습니다. 정부가 유해성 여부를 인지하고 있었단 얘깁니다.

1년이 지난 2012년 8월, 피해 가족들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업체들을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보건당국의 역학조사를 기다린다는 명목으로 1년 간 기소를 중지했습니다. 특별수사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선 것은 지난 1월입니다.

이렇게 5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처음 불거진 뒤 검찰 수사팀이 꾸려지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그동안 기업들에 대한 제재는 있었을까요?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마저도 안전성을 허위로 광고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정부와 수사당국이 손놓은 사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스러져간 것일까요.

■ 알려지지 않은 것

검찰은 제조업체의 과실 여부, 살균제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 등을 가려내야 합니다. 애초 검찰 수사에 임할 때 옥시는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도 않고,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존 리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와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전·현직 간부 9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하지만 2012년 초 옥시 대표를 지내며 불리한 흡입독성 실험 결과 보고서를 은폐한 혐의가 있는 거라브 제인 옥시 전 대표는 “바쁘다”는 이유로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은 곧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피해자들은 외국계 기업에 대한 수사가 부실하고 살균제 독성물질을 공급해온 SK케미칼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에 울분을 토해냅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계속 추적해온 장하나 전 국회의원은 “정부, 검찰이 다 손을 놓고 쇼만 하고 있다”고 일갈했습니다. 한 검찰 간부는 <한겨레>에 “어떤 이유를 갖다 대든, 아직도 수사 중이라는 것은 국가의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공공의 안녕을 위협한 이들을 재판에 넘길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검찰이 이번 사건에 있어 말만 요란하고 수사는 헐겁다고 느끼는 것은, 저뿐인가요?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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