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검찰, 이석수 핑계로 우병우 수사 미적댈 듯”

검사들 “우 수석이 청와대 대응 주도했을 것”

청와대가 19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수사의뢰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공격하며 사실상 검찰에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우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저지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이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일단 이 특별감찰관이 감찰과 관련해 언론사 기자와 통화한 것을 청와대의 주장처럼 특별감찰관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누설이라는 것은 법률적으로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외부에 흘리는 행위인데, 이 기준에서 보면 이 특별감찰관의 발언이 새로운 감찰 사실을 흘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 아들의 보직 특혜 의혹 등을 감찰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라서 법적으로 누설에 해당하려면 더 구체적인 감찰 내용을 기자에게 알렸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동아일보> 등이 공개한 이 특별감찰관의 발언록을 보면 통화 내용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방해로 감찰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호소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서 감찰 내용을 누설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처럼 실정법 위반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데도 청와대가 이 특별감찰관에 대한 수사를 지시하고 나선 것은 우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저지하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어 보인다. 우 수석이 검찰 수사대상이 된 지 하루만에 청와대의 발표가 나왔다는 것은 사실상 검찰에 우 수석에 대한 수사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청와대가 우 수석을 적극적으로 감싸고 있기 때문에 검찰 수뇌부가 수사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이 특별감찰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감찰 내용을 누설했다고 보기 어려운데다 설사 누설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감찰 대상자인 우 수석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여론의 거센 비난과 정치권의 강한 반발에 부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홍만표·진경준 전 검사장 비위 사건 등으로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서 이 특별감찰관에 대한 수사 착수는 검찰에 악재가 될 게 불보듯 뻔하다.

따라서 검찰 수뇌부가 이 특별감찰관 사건을 핑계로 우 수석 사건에 대한 수사도 차일피일 미룰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수사의 형평성을 핑계로 현직 민정수석을 수사해야 하는 부담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이 특별감찰관에 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안팎에선 검찰 수뇌부의 이런 속성을 잘 아는 우 수석이 청와대의 이번 대응을 주도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검사들은 우 수석이 현직에 있는 한 제대로 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나 경찰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말단 직원을 조사하려고 해도 민정수석이 오케이 하지 않으면 수사가 불가능하다. 이런 마당에 민정수석에 대한 조사가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역대 정권에서 정부의 사정 작업을 주도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검찰·법무부 고위 간부가 현직인 상태에서 수사를 받은 전례는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신광옥 법무부 차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르자 사표를 낸 뒤 검찰 조사를 받았다. 신승남 전 검찰총장은 2002년 친동생이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차정일 특검팀에 구속되자 총장직에서 사퇴했다. 앞서 김태정 전 법무부 장관과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도 옷로비 의혹 사건에 연루되자 자진 사퇴했다.

허재현 서영지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