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위안부 증언’ 첫 보도한 전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교수
1991년 김학순 할머니 증언 첫 보도
2년 전 우익매체들 ‘날조 기사’ 공세
가톨릭대 초빙 ‘동아시아 평화’ 강의
“두 나라 학생들 화해의 고리 되고파”
‘12·28 한일합의’ 20년 전보다 퇴보
“일본정부 진심과 반성만이 해법”
1991년 김학순 할머니 증언 첫 보도
2년 전 우익매체들 ‘날조 기사’ 공세
가톨릭대 초빙 ‘동아시아 평화’ 강의
“두 나라 학생들 화해의 고리 되고파”
‘12·28 한일합의’ 20년 전보다 퇴보
“일본정부 진심과 반성만이 해법”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31일 오후 초빙교수로 강의 중인 경기 부천 가톨릭대에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부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는 <아사히신문> 기자 시절인 1991년 8월11일 고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는 보수적인 유교 문화 탓에 ‘성 착취’ 피해를 당하고도 평생토록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한국 내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를 드러낸 첫 보도였다. 그 사흘 뒤 김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처음 얼굴을 드러냈다. 우에무라 교수는 “12·28 합의에도,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도 이에 대해 눈감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빠진 합의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어렵게 할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부천 가톨릭대 이엘피(ELP)학부 초빙교수로 한국에 온 그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문화’ 강의를 하고 있다. 1982년 ‘아사히’에 입사한 뒤 2014년 3월까지 30년 넘게 기자로 근무했다. 서울특파원, 중동특파원, 베이징특파원 등을 지냈다. 고베쇼인여대 전임교수로 내정됐던 그는 2014년 1월 주간지 <주간문춘>에서 ‘위안부 날조 아사히신문 기자가 아가씨들이 다니는 여자대학의 교수로’라는 기사를 쓰면서, 일본 우익들의 집중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의 압력 탓에 결국 고베쇼인여대에서는 고용 계약을 취소해버렸다. 그가 시간강사로 일하던 홋카이도 호쿠세이학원대학에까지 우익의 공세가 이어졌지만, 이에 반대하는 일본 지식인들이 모임을 결성해 우에무라 교수를 도우면서 재계약에 성공했다. 호쿠세이학원대학과 가톨릭대는 교류를 맺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한국 위안부 증언 기사로 우익세력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 3·1 독립운동과 5·18 민주화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를 소재로 평화와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는 강의를 하고 있다. “평화나 인권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늘 살아가면서 이에 대해 고민하고 움직여야 더욱 평화로운 사회, 인권이 확장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취지의 강의입니다.” 어지럽게 책과 인쇄물이 널려 있는 그의 연구실 책상 한쪽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놓여 있었다. “윤동주를 좋아한다. 윤동주의 시 세계 자체가 독립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도 수업 내용 중에 포함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12·28 합의를 통해 한·일 양국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위한 단추를 끼웠다고 평가했지만, 한국 내 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한 번의 합의로 해결할 수는 없어요. 독일의 총리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사과하고 또 사과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돈과 약속의 문제가 아니라 진심과 반성의 문제이니까요.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를 계승해 끊임없이 사과하고, 기억의 계승 작업을 통해 일본인 마음속에 소녀상이 자리잡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여론기관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면 소녀상 철거 반대 여론이 더 높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성급하게 매듭지으려 하면서 오히려 새로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두 나라 시민들이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먼저 화해·협력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현재 자신을 부당한 논리로 비방했던 ‘주간문춘’과 우익 인사 니시오카 쓰토무 도쿄기독교대학 교수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재판 준비를 위해 자주 일본을 오가며 챙겨야 할 일도 많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분명하다. “화해를 위한 두 나라 학생 간의 창구가 되고자 합니다.” uk@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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